'중동 정세 불안에' 주유소 휘발유 값 23주 연속 랠리…1L당 1600원 넘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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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 초에도 국내 주유소 휘발윳값 오름세가 심상찮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원유 공급 감소, 세계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확대 전망 등으로 23주 연속 상승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1월 첫째주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값 1544.9원 #이란 시위·경기 회복 기대에 국제 유가도 올라 #물가 상승 부추겨 서민 경제엔 타격 #'저유가 불황' 겪은 조선업엔 희소식

1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올해 1월 첫째 주 국내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주대비 1L당 1.8원 오른 1544.9원을 기록했다. 경유도 1.8원 오른 1337.0원을, 등유는 1.3원 오른 889.3원을 기록했다. 특히 휘발윳값은 지난해 7월 넷째 주 1437.8원으로 바닥을 찍은 뒤 23주 연속 상승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올해 1분기 안에 1600원대를 돌파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유가는 국제 유가가 오르면 덩달아 오르게 된다. 국내 유가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 9일 전일 대비 1배럴당 47센트 오른 65.51달러에 마감했다. 증권가에선 지난해 50달러 후반에서 60달러 초반에 머물러 있던 두바이유 가격이 올 상반기 70달러를 돌파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제 유가 상승에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이란 반정부 시위가 영향을 미쳤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3위 산유국인 이란이 정정 불안으로 원유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 유가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또 리비아에선 지난해 12월 26일 이슬람국가(IS) 무장세력 소행으로 추정되는 송유관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석유 공급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86%는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어 이 지역 정세가 불안하면 국내 휘발윳값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는 점도 유가 상승에 한몫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석유 수요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9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7%로 전망했다. 이 은행이 지난해 6월 제시한 전망치보다 0.1%포인트 오른 수치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0월과 11월 각각 발표한 성장률 예측치도 이번 세계은행 전망치와 같았다.

서태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에는 유가가 오를 때마다 미국 셰일오일(유기물암석층에서 뽑아낸 석유) 공급 확대 전망이 나와 유가 상승세가 다시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며 "올해에는 세계 경기 회복, 석유수출국기구 국가들의 감산 합의 연장, 중동 정세 불안 등으로 유가 상승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경회 KB증권 연구원도 "최근 유가가 너무 빨리 올라 올 1분기에 다시 하락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올해 3분기까지는 완만하게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석유수출국기구 주도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나서고 있는 것도 유가 상승을 예측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유가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 경제에는 부담을 줄 순 있지만, 조선·건설·정유 등 일부 업종에는 희소식이다. 특히 국내 조선업은 수년째 이어진 저유가 상황에서 원유 시추 설비인 해양 플랜트 인도가 늦어지거나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의 '유가 랠리'는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60달러 후반에서 70달러 초반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며 "유가가 70달러를 넘어가면 원유 시추 설비, 플랜트 등의 수출 품목 비중이 높은 조선·건설업 업황에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석유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석유화학업계는 원가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케미칼 등 국내 석유화학 3사는 원유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원료로 합성섬유·합성수지의 원료인 에틸렌을 생산한다. 국제 유가가 65달러를 넘어서면 나프타 가격이 천연가스 가격을 넘어서게 된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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