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원유 연계 암호화폐 1억개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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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니콜라스 마두로

니콜라스 마두로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의 정치인이 세계 최초로 정부가 발행하는 암호화폐 도입을 선언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56·사진) 대통령이다.

마두로 대통령 최악 인플레 잡기 #국가론 세계 처음 14일 발행키로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오는 14일 암호화폐 1억개를 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름은 ‘페트로’다. 암호화폐를 이용해 극심한 경제 위기를 넘어보자는 구상이다.

페트로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자처한다. 하지만 종이나 동전으로 찍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닮은 점이 없다. 가장 큰 차이점이 실물 자산과 관계다. 비트코인은 금이나 은·원유 같은 실물 자산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페트로는 전혀 딴판이다. 실물 자산과 묶여 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1페트로=원유 1배럴’을 제시했다. 원유 1배럴, 즉 1페트로의 가치는 59달러로 계산했다. 1억 페트로는 59억 달러(약 6조3000억원)에 해당한다.

또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은 정부의 통제권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컴퓨터의 집합체가 기록을 관리한다.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반면 페트로는 마두로 대통령의 행정 명령으로 발행이 결정됐다. 비트코인의 ‘채굴’에 해당하는 과정이 페트로에선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이뤄졌다.

페트로의 탄생 배경은 베네수엘라의 살인적인 인플레다. 지난해 공식 물가 상승률은 2616%였다. 이 나라의 화폐 단위는 볼리바르다. 암시장에선 1달러에 13만7000볼리바르에 거래된다. 공식 환율의 1만3700배나 된다. 마두로 대통령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통화 가치 안정은 시급한 과제다.

페트로를 외국 투자자들에게 팔 수만 있다면 베네수엘라는 외환보유액을 대폭 늘리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야당과 외신들의 반응은 차갑다. 페트로가 실생활에서 사용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베네수엘라의 열악한 정보기술(IT) 인프라 사정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사주지 않으면 단순한 전자 파일에 불과하다. 로이터통신은 “어떤 투자자가 사려고 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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