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붙잡힌 부산 다방 여종업원 살해 남성 무기징역

중앙일보

입력

부산에서 다방 여종업원을 처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15년 만에 검거된 40대 남성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 “강도살인 합리적 의심없어”…배심원 9명 중 7명 유죄 평결

부산지법 형사합의7부(재판장 김종수)는 다방 여종업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강도살인)로 기소된 양모(46)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2002년 5월 부산 사상구의 한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한 피의자가 피해자 통장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찍힌 은행 폐쇄회로TV(CCTV)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2002년 5월 부산 사상구의 한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한 피의자가 피해자 통장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찍힌 은행 폐쇄회로TV(CCTV)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법원 등에 따르면, 피고인 양씨(당시 31세)는 2002년 5월 21일 부산 사상구 괘법동에 있는 한 다방에서 퇴근 중이던 여종업원 A(당시 21세)씨를 납치했다. 양씨는A씨의 손과 발을 테이프로 묶은 뒤 흉기로 신체 여러곳을 찔러 살해했다. 양씨는 숨진 A씨의 시신을 마대자루에 담아 부산 강서구 인근 바다에 버렸다.

그는 또 다음날 낮 12시 15분께 부산 사상구의 한 은행에서 A 씨 통장에 있던 돈 296만 원을 인출하고 같은 해 6월 12일 부산 북구의 한 은행에서 주점 여종업원 2명을 시켜 A 씨의 적금 500만 원을 해지해 챙긴 혐의를 받는다.

자칫 미제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2015년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최장 25년)를 폐지하도록 형사소송법(일명 태완이법)이 개정된 이후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의 끈질긴 노력과 시민 제보로 15년 만에 해결됐다.

경찰 조사결과 양씨는 2002년 7월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혐의로 체포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A씨가 살해된 지 불과 두 달 뒤의 일이다.

2002년 부산 사상구에서 발생한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피의자가 무려 15년여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15년전 발견된 살인사건 피해자 시신이 담긴 마대자루.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2002년 부산 사상구에서 발생한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피의자가 무려 15년여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15년전 발견된 살인사건 피해자 시신이 담긴 마대자루. [사진 부산경찰청 제공]

바로 다음 해인 2003년 양씨는 부녀자 특수강도강간 등의 사건을 저질러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양씨는 집행유예가 취소돼 9년간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2012년 출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2월 25일 용의자들을 공개 수배하면서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서도 용의자들의 얼굴을 공개하고 시민의 도움을 요청했다. 덕분에 공범의 사진을 본 지인이 지난해 3월 경찰에 제보했고 경찰은 같은 해 4월 이모씨 등 공범 2명을 붙잡았다. 이어 공범이 돈을 찾을 당시 은행 주변 기지국을 경유한 휴대전화 통화기록 1만5000여 건을 정밀 분석해 양씨의 신원을 파악했고 지난 21일 전격 체포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영상분석연구소에 의뢰해 CCTV에 나오는 양씨의 사진과 최근 사진, 돈을 찾을 때 사용한 전표의 필적과 최근 필적을 대조한 결과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특히 양씨와 동거한 B씨에게서 "2002년 5월쯤 양씨와 함께 둥글고 물컹한 느낌이 있는 물체가 담긴 마대자루를 옮겼고 마대자루 아래로 검은색 비닐봉지가 보였지만 당시 무서워서 어떤 물건인지 물어보지 못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양씨가 시신 유기에 사용한 승용차를 중고로 산 C씨도 "뒷자석 가죽 시트를 벗기다 핏자국으로 보이는 검붉은 얼룩을 발견했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통장과 도장 등이 든 A 씨의 핸드백을 주워 비밀번호를 조합해 돈을 인출했을 뿐 살해하지 않았다는 양 씨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검찰이 제시한 여러 간접 증거로 미뤄 양 씨가 강도살인을 저질렀다는 데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의견을 고려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피고인 양씨의 신청으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배심원 평결은 유죄 7명, 무죄 2명이었다. 양형 의견은 사형 3명, 무기징역 4명, 징역 15년이 2명이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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