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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 ‘김프’ 우스운 ‘업프’…‘코린이’가 비트코인 열풍 주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 시장에서 정부는 지금까지 백전백패였다. 정부가 시장을 안정화한다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순간 가격이 폭락하더라도 이내 회복했다. 암호화폐를 모르던 이들까지 정부 대책이 발표로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박’이 가능하다는 꿈에 부풀어 새로운 투자자들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시장은 더 과열됐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이쯤 되면 정부가 세력”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업비트, 국내서도 3~5% 비싸 #암호화폐 시장에 신규 진입한 #‘코인 어린이’들이 프리미엄 폭증

정부 실패를 입증하는 정황적 증거는 ‘대한민국 최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표방하는 업비트의 회원 수와 거래량이다. 업비트는 지난해 10월에 출범해 2개월 만에 회원 수 총 120만명, 일평균 이용자 100만명을 기록했다. 업비트 관계자는 “코인마켓캡(거래소 데이터를 집계하는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에 데이터를 보내지 않아 글로벌 순위에서 이름이 빠졌지만 보통 하루 평균 거래량이 5조원, 최대 10조원에 이르는 1위 암호화폐 거래소”라고 말했다.

출처: 업비트

출처: 업비트

업비트에 신규 투자자들이 몰리다 보니 업비트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 가격이 국내 다른 거래소보다도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8일 오전 10시 50분 현재 비트코인은 업비트에서는 2544만4000원이지만, 빗썸에서는 2510만2000원이다. 코인원도 2505만원에 거래됐다. 업비트 가격이 항상 2~5% 안팎 비싸다. 7일 오후 2시 기준으로는 빗썸에서 2497만원에 거래될 때, 업비트에서는 2601만원에 거래됐다.

◇‘업프’ 노린 국내 재정거래 세력까지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업비트의 암호화폐 가격이 비싸게 거래되는 걸 ‘업프(업비트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일부선 “김프(김치 프리미엄,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보다 업프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업프가 김프보다도 심한 건 ‘코린이’들 때문이다. 코린이는 암호화폐 시장에 신규 진입한 투자자들을 의미하는 ‘코인 어린이’를 줄여 부르는 애칭이다.

업비트에 코린이들이 몰리는 이유의 8할은 카카오톡이다. 업비트는 2013년 카카오의 100% 자회사인 케이큐브벤처스가 투자한 두나무의 자회사다. 카카오의 증손자쯤 된다. 친인척(?) 관계다 보니 업비트는 카카오톡 플랫폼을 회원 가입에 활용한다. 카카오톡 가입자라면 클릭 몇 번이면 업비트 회원이 될 수 있다. 현금을 출금하거나 암호화폐를 송금할 때에도 카카오페이를 통한 인증절차를 거친다. 구글 OTP 등을 통해 인증을 해야 하는 다른 거래소보다 훨씬 중장년층 친화적이다.

코린이들은 대개 업비트 한 곳만을 이용해 암호화폐를 거래한다. 국내 거래소별 가격 차이를 비교해 가장 싼 곳에서 사지 않고 그냥 사버린다. 가격 차이를 이용해 국내-해외 거래소 간 이뤄지던 재정 거래를 국내에서 하는 이들까지 나온다. 빗썸에서 비트코인을 사서 업비트에서 파는 식이다.

그렇지만 막상 재정거래는 쉽지 않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옮기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사이 가격 자체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송금에 몇 초밖에 걸리지 않는 리플 등은 업비트에서 입출금을 막아놨다.

한 암호화폐 투자자는 “과거에는 김치 프리미엄이 30%를 넘어가면 조정, 40%를 넘어가면 폭락 신호로 인식했지만 최근엔 30% 정도의 김프는 인정해 줘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며 “업프 가격이 글로벌 시세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코인들…동전주, 작전에 휘말릴 수도
업비트의 또 다른 인기의 이유는 가장 많은 종류의 암호화폐를 상장했다는 점이다. 현재 122개의 암호화폐를 원화 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으로 구매할 수 있다. 세계적 거래소인 비트렉스와의 독점 제휴를 통해서다.

업비트 이전 국내 거래소들은 자체적으로 심사를 거쳐, 거래량이 많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기대되는 암호화폐만을 상장했다. 현재 빗썸이 취급하는 암호화폐는 12개다. 코인마켓캡 기준 시가총액 상위 20위권 밖에 있는 암호화폐는 Z캐시(23위)가 유일하다. 그나마 최근 다른 암호화폐가 급등하면서 자리를 내줬을 뿐이지 빗썸 상장 당시에는 20위권내 들었다. 코인원이 취급하는 암호화폐는 9개에 그친다. 그나마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돼 기존 비트코인 투자자들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 상장한 비트코인캐시(BCH)와 비트코인골드(BTG)를 제외하면 7개에 불과하다.

업비트에서 취급하는 암호화폐가 122종이나 되다 보니 가격이 1000원에도 못 미치는 일명 ‘동전주’가 수두룩하다. 코린이들은 특히 개당 가격이 2500만원 안팎이어서 심리적 장벽이 있는 비트코인보다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도 살 수 있는 동전주에 주목했다. 비트코인이 두 배 오르려면 2500만원 넘게 올라야 하지만, 동전주는 1000원만 올라도 두 배 넘게 오른다는 계산이다.

그간 동전주에 투자하고 싶은 이들은 국내 거래소가 이런 암호화폐를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해외 거래소를 이용해야 했다. 그만큼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그래도 잔뼈가 굵고 좀 안다는 사람들만이 동전주에 투자했다. 그런데 업비트가 열리면서 코린이들도 동전주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은 그야말로 동전주의 질주였다. 코린이들이 동전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현재 업비트에서 원화로 살 수 있는 동전주는 스테이터스네트워크토큰(SNT) 1개에 그친다. 은행 간 대형 자금 송금을 위해 만들어진 리플은 지난달 12월 초 282원에서 지난 4일엔 4925원까지 올랐다. 한 달여 만에 1600%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은행 없이 개인 간 송금을 쉽게 한다는 스텔라루멘(XLM)은 약 1500%, 3세대 코인을 표방하는 카르다노(ADA)는 약 1300% 급등했다.

출처: 업비트

출처: 업비트

코린이들이 넘쳐나다 보니 동시에 작전 세력도 활개를 친다. 시가총액이 크지 않고, 거래량이 적은 동전주들을 돌아가면서 ‘펌핑(가격을 끌어올리는 일)’ 했다가 먼저 던지고 빠지는(덤핑) 일명 ‘운전수’들이 코린이들을 유혹한다. 작년 12월 초 3000억 달러에 못 미치던 암호화폐 전체 시장이 8일 현재 8200억 달러로 두 배 넘게 커졌는데도 원금까지 까먹었다는 코린이들이 많은 이유다. 마치 코스피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데도 개미(개인 투자자)들 가운데 돈 벌었다는 이가 드문 상황과 같다.

한 암호화폐 전문가는 “투자자 선택권 확대 측면에서 업비트가 100개가 넘는 코인(암호화폐)을 상장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일차적으로 암호화폐를 선별해 투자자들에게 제공해야 거래소가 자신의 의무를 저버린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그렇게 많은 코인을 상장해 놓고 지갑(암호화폐를 입출금할 수 있는 일종의 계좌)조차 마련하지 않아 외부 거래소와의 입금과 송금을 막아놓은 것은 가격 왜곡 방조를 넘어 조장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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