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난 후 앉아있다 뒤에서 '쿵'…법원 "피해자 책임 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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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 다중 추돌 사고가 벌어진 현장.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눈길에 다중 추돌 사고가 벌어진 현장. 사진은 이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사고난 차량을 들이받는 연쇄 사고를 낸 후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뒤에 오던 차에 받혔다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던 피해자의 책임도 20%라는 판결이 나왔다.

겨울밤 4중 추돌사고 발생 #앞 차 받고도 아무 조치 않아 #법원, "후행사고 방지했어야" #피해자도 20% 과실책임 인정

2014년 어느 겨울밤 충남 논산시의 한 국도에서 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2차로의 직선도로였지만 내렸던 눈이 얼어 미끄러웠다. 눈길에 미끄러진 첫 번째 차가 방음벽을 들이받고 도로를 가로질러 멈췄다. 뒤따라 오던 두 번째 차는 황급히 핸들을 꺾었지만 첫 번째 차와 부딪혔다.

지난 2013년 12월 사고가 났던 충청남도 논산시의 2차로 도로. 눈길에 미끄러진 첫 번째 차량이 방음벽을 들이받은 후 뒤따르던 차량들이 추돌하며 4중 사고로 이어졌다. [네이버 로드뷰 캡쳐]

지난 2013년 12월 사고가 났던 충청남도 논산시의 2차로 도로. 눈길에 미끄러진 첫 번째 차량이 방음벽을 들이받은 후 뒤따르던 차량들이 추돌하며 4중 사고로 이어졌다. [네이버 로드뷰 캡쳐]

두 번째 차는 사고를 낸 후 갓길로 빠졌지만, 맨 처음 사고를 냈던 차는 여전히 도로를 가로질러 서 있었다. 여기에 세 번째 차가 와서 또다시 추돌 사고가 벌어진다. 그러고 나서 네 번째 차까지 달려와 두 차를 들이받고 나서야 사고는 끝났다.

세 번째 차에 타고 있던 A씨는 네 번째 사고를 낸 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사고 1년 후 시작된 소송은 2년 8개월 동안 이어졌고 지난해 11월에서야 결론이 났다. 법원은 네 번째 사고가 벌어진 데에는 A씨도 20%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보험사가 배상해야 할 손해를 일부만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7단독 서봉조 판사는 “앞선 사고를 야기한 과실과 후행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면서 보험사는 A씨에게 500만원의 위자료만 배상해 주면 된다고 판결했다. 오히려 보험사가 이미 A씨에게 지급한 치료비 500여만원 중 20%를 돌려줘야 할 판이어서, 위자료 외에 A씨가 더 받을 수 있는 돈은 없었다. 서 판사는 또 “위험한 도로 위에 정차하게 됐으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등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잘못이 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2차 사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차량 뒤에 삼각대 등을 설치해 뒤에 오는 차량에 사고 상황을 알려야한다. [교통안전공단 제공]

2차 사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차량 뒤에 삼각대 등을 설치해 뒤에 오는 차량에 사고 상황을 알려야한다. [교통안전공단 제공]

도로교통법 66조에 따르면 고속도로에서 사고나 고장으로 운행하지 못할 경우 이를 알리는 표지를 설치해야 하고, 차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A씨의 경우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에서 벌어진 사고였지만 비슷한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사고가 났으면 삼각대나 불꽃신호 등을 설치해 정상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뒤에 오는 차에게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날씨가 추운 겨울철의 경우 사고가 난 후 차 안에서 사고처리 등을 기다리며 그대로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데 2차 사고가 벌어질 수 있다”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도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특히 추돌사고의 경우 잘잘못이 명확하기 때문에 다른 차량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를 갓길로 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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