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안냐세요"방가방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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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펀쓰(粉絲.스타가수의 팬), PK(player killed.탈락), 쿵룽(恐龍.추녀)…."

위험 수위에 오른 인터넷 언어파괴를 놓고 중국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인터넷 신조어 때문에 '한자 왕국'이라는 자부심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채팅.댓글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네티즌 용어가 비속어.은어.축약어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상하이시 정부는 최근 공공 영역에서 네티즌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 국적불명 언어파괴=최근 중국 신문엔 팬클럽 또는 팬을 음역한 '펀쓰'나 게임 용어인 PK 같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인터넷에선 SL(色狼.호색한), SP(support.支持)처럼 중문 또는 영문 발음을 딴 축약어가 유행이다. 또 장쯔(醬紫.이처럼), 커우녠(口年.측은한) 등 한자의 일반 조어법을 무시한 채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단어가 인기다. 한국 네티즌이 쓰는 방가(반가워요).추카(축하해요).걍(그냥)과 같은 조어 방식이다.

7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한류를 타고 중국에 소개된 '그놈은 멋있었다' 등 인터넷 소설이 보수적인 중국 여론을 더욱 자극했다. 한국의 인터넷 소설 때문에 컴퓨터 자판의 기호를 이용한 '=_=''@_@''~.~'등 기호 용어가 젊은 층이 애용하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생활 문서에까지 범람하게 됐다는 것이다.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서점가의 인터넷 소설 전문 서가엔 기호 용어로 가득 찬 책들이 진열돼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대부분 한국 인터넷 소설을 모방한 아류작이지만 기호 용어가 주는 신선감 때문에 청소년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 베이징 출판계의 분석이다.

해방일보는 "시험 답안지에 인터넷 신조어를 쓰는 중학생들도 있으며, 심지어 입사 지원서에까지 국적불명의 네티즌 용어를 쓰는 대학생들도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들 중에는 유행을 선도한다고 자긍심을 느끼는 학생도 있다"고 덧붙였다.

◆ 교육 당국 위기감=상하이시 정부는 1일 '국가통용언어문자법' 조례의 시행에 들어갔다. 조례에 따르면 상하이시의 신문.방송.공문서.교과서 등 공공 분야에서 네티즌 용어를 쓸 수 없다. 광고.인터넷 신문 등에서도 네티즌 은어 사용을 금지시켰다. 상하이시는 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각급 기관마다 언어순화위원회를 두고 상시 감시 체제에 들어갔다. 또 각급 학교에선 시험 등에서 네티즌 은어를 사용할 경우 점수를 깎도록 채점 규정을 강화했다.

◆ "인터넷판 분서갱유"=조례가 시행되자 인터넷에선 격론이 일었다. 찬성보다 반대가 더 많았다. 네티즌들은 "신조어는 한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만들어낸 창의성의 결정체"라며 이번 조치에 반발했다. 상하이대의 한 중문과 교수는 "학생들이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려면 어문교육 안에 네티즌 언어를 포함시켜 스스로 언어에 대해 감별력을 갖도록 하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신화통신은 "인터넷 시대가 낳은 네티즌 언어의 불가피성도 인정해야 한다"며 "대중의 입맛은 의사소통에 편리한 언어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기 때문에 법의 잣대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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