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한국 축구팀에 갈 수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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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480억원짜리 선수' 에시앙을 배출한 가나의 리버티 클럽이 사용하는 낡은 축구공. 선수들이 훈련 중 감독의 지시를 듣고 있다. 아크라(가나)=박종근 기자

일요일 오후 가나 아크라시 외곽의 한 체육공원에서 14~17세 유소년 지역리그가 열렸다. 말이 체육공원이지 거친 모래가 깔린 맨땅이다. 공식 리그 경기인데도 경기장에 선이 하나도 없다. 운동장을 빙 둘러선 수백 명의 구경꾼이 자연스럽게 터치라인과 골라인을 만들었다. 나무 위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있다.

리그 4위인 홈팀 톱 탤런트가 1위를 달리고 있는 사라피나를 맞아 후반 한 골을 넣었다. 구경꾼 100여 명이 "와아-" 함성을 지르며 한꺼번에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골을 넣은 마이클 아유티(14)를 무동 태우고 운동장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

경기는 1-0으로 끝났고,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합숙소로 이동했다. 감독은 "오늘 멋진 경기를 했다. 다음 주 화요일 경기도 꼭 이기자"고 말한 뒤 함께 손을 맞잡고 기도를 했다. 힘든 경기를 이겼지만 회식은커녕 콜라 한 잔도 없었다. 그렇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들은 함께 구호를 외쳤고,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합창과 흥겨운 춤으로 이어졌다.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취재진은 골을 넣은 아유티를 따라갔다. 시멘트 벽에 함석 지붕을 얹은 방 세 칸짜리 집이다. 허름한 외양과는 달리 방 안에는 정수기와 냉장고, 부엌에는 가스레인지도 있었다. 아유티의 아버지는 동네 추장이고, 어머니는 가게에서 시멘트.페인트 등을 판다.

낯선 취재진에게 경계심을 보이던 아유티의 어머니는 2002월드컵 공식 티셔츠와 배지를 선물하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고는 "우리 아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유티는 수줍은 목소리로 "브라질의 호나우디뉴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태어나서 동네를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는 이 소년이 프로팀 스카우트의 눈에 띌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아크라(가나)=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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