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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장관 한날 합의 파기 시사 … 일본 “합의 변경 못 받아들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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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위안부 피해 문제에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 실현을 내세우며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도 염두에 둔 듯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선언한 지 꼭 일주일 만인 4일 다시 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움직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났다’며 종전보다 강한 톤으로 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강 장관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강 장관은 이어 “그렇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한 생각을 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외교부 수장이 지속적으로 사실상 파기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은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의 검토를 통해 발견된 하자가 합의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대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강경화 “위안부 합의, 모든 게 가능 #피해자·지원단체와 소통 부족했다” #아베는 신년회견서 위안부에 침묵

위안부 합의에는 법적인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재협상과 파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재협상은 합의의 상대방인 일본 측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고, 파기할 경우 한·일 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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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또 피해자 중심주의를 핵심으로 꼽으면서도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도 내에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이를 어떤 식으로 정책에 반영할지 기준을 정한 것은 없다고 한다.

피해자의 범주를 놓고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강 장관은 이날 “합의 당사자인 피해자와 그분들을 지원해 온 단체들과 소통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흠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논란이 있다. 단체가 지원하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필요하지만 단체 관계자들까지 피해자에 준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이견이다. 대외적으로 뚜렷하게 합의 반대 의견을 밝혀 온 단체들 위주로 의견이 수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위안부 할머니 초청 오찬이 끝난 뒤 발표한 서면 브리핑에서 합의를 부정적으로 보는 할머니들의 발언 내용만 소개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목소리를 많이 낸 사람뿐 아니라 침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정대협을 만나봤으면 화해·치유재단도 만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4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대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밤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으로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한국이 재협상을 요구해도 일본이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한 일본대사관도 이날 한국 외교부에 “위안부 합의 변경을 시도한다면 한·일 관계는 관리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서울=유지혜·박유미 기자, 도쿄=윤설영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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