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여수만 무슬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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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로 드나드는 파도와 몽돌이 만들어 내는 화음을 들어 보세요. 한낱 자연의 돌멩이지만 여명에 신비한 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꿈결 같습니다. 어느 날엔 바닷가의 돌멩이로 그들과 함께하는 꿈을 꾸고 싶어요. 수천 년을 깎이고 깎인 둥그런 돌멩이로 파도와 새벽 빛의 애무를 받는 꿈을요." 여수만의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는 몽돌 더미 해안에서 만난 한 남자는 '무슬목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저 지나치는 사람에겐 보잘것없는 바닷가 돌멩이지만 그 모습을 통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로 그려내는 작가 한창호의 꿈이다.

"새벽녘의 희미한 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돌멩이를 가슴에 품은 지 얼추 15년이에요. 하지만 단 하루도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날씨와 구름의 높낮이에 따라, 계절과 하늘의 색에 따라 오묘한 색이 나타나죠. 푸르고 붉다가 고운 자주색을 띠는가 하면 비가 올 땐 녹색까지 띱니다. 이럴 땐 우산을 등에 꽂고 끈으로 묶은 채 촬영을 합니다."

어김없이 새벽이면 또 하나의 몽돌이 되어 무슬목에 서는 그의 꿈은 언제쯤 끝날까? 생명 없는 무슬목의 모든 몽돌이 그의 작품 속에서 생명을 얻게 되면 끝나려나.

"촬영하기 좋은 시간은 수평선에서 해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고작 5분 남짓입니다. 밝아지면 긴 노출시간을 못 주고요. 물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의 느낌이 달라요. 요즘은 알음알음 단체로 찾아오는데 남이 찍은 것 흉내 내기보다 자신의 시각으로 찍어야 합니다. 사진은 무엇보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겁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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