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48. 영화음악 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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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영화 '하류인생'의 촬영 현장. 왼쪽부터 정일성 촬영감독, 필자,임권택 감독,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 배우 김민선씨.

나는 진정한 음악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걸 들려주는 기술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컴퓨터 음악을 연구한 데 이어 요즘엔 DVD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DVD는 멀티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다. 고정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음을 여러 갈래로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DVD는 24비트(bit)의 음질을 낼 수 있다. 오리지널만큼은 아니지만 풍부한 음을 구현한다. CD의 음질이 그보다 떨어지는 16비트니, mp3의 음질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음이 깎여도 한참 더 깎인다. 요즘은 음악의 양은 많을 지 몰라도 질은 형편없는 셈이다.

최근 가정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5.1채널 홈씨어터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영화는 화면 상에서 배우의 동선을 따라 음향이 움직이는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5.1채널을 쓴다. 음악은 조금 다르다. 나는 음악만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를 구상한다. 가만히 앉아서 우주를 날아다니고,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개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적용한다. 그래서 영화가 더 생동감 있다.

2004년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에서 나는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두 노익장이 만난다는 소식에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류인생 영화음악 작업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나는 당연히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로 음악을 만들었다. 그런데 공들여 한 작업이 모조리 물거품이 됐다. 결정권을 가진 이들이 옛날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극장의 시스템은 그런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도록 완비돼 있었다. 그런데 "뒤쪽에서 소리가 나면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낀다"는 식의 핑계를 댔다. 시연을 할 때도 감독 등이 극장 맨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어보더니 "별 효과 없다"는 게 아닌가. 서라운드는 객석 중간 쯤에서 듣는 게 가장 좋다. 그래야 앞과 뒤에서 각각 나오는 소리의 움직임을 생생히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생한 게 모두 물거품이 됐다. 기운이 쑥 빠졌다.

게다가 임 감독과 음악에 대한 의견 충돌도 심했다. 결국 포기하다시피 적당한 선에서 끝냈다. 영화에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처음에 만들었던 주제곡은 내 홈페이지(www.sjhmvd.com)에도 올려놨다. 대중과 함께 들었으면 해서다.

내가 영화음악을 그리 많이 만든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문외한도 아니다. 한창 바삐 활동하던 70년대 전후에 뮤지컬 영화만도 두 편을 만드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1968년 조영남.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남진 등 당대 유명 가수들이 모조리 출연한 김응천 감독의 '푸른 사과'가 첫 작품이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뮤지컬 영화다. 감독도 음악에 관심이 있던 양반이라 죽이 잘 맞았다. 그는 내가 만든 음악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영화에 반영했다. 첫 작품이라 지금도 잊지 못한다.

1975년 5월에 개봉된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김선생과 어머니(아이 러브 마마)'도 약간 코믹한 뮤지컬 영화였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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