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한파마저 돌아서는 일본, 그 내부 분위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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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4일 필리핀 마닐라 PICC(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 기념촬영을 위해 나란히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4일 필리핀 마닐라 PICC(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 기념촬영을 위해 나란히 서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이 끊어야할 진짜 악폐’
29일 일본의 유력지인 아사히 신문 오피니언면에 실린 하코다 테츠야(箱田哲也)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이다. 그는 한 번의 연수와 두 차례의 특파원 근무를 합쳐 모두 10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지한파 언론인이다.

칼럼에서 그는 ‘박근혜 정권의 몇 개 안되는 실적’ 중 하나인 한일 위안부 합의를 검증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 내건 ‘적폐청산’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 봤다. 이어 그는 "양측이 합의문을 대략 만들어 놓은 뒤에도, 문안 하나를 놓고도 일본은 수정을 요구하고 한국은 철저하게 항전하며 한자 한자를 놓고 10개월을 대립한 결과가 바로 위안부 합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 정권이 했던 일들 모두를 나쁘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 한다면 한국 정치의 악폐,‘보복의 악순환’을 언제까지도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친구로서의 우려와 조언”이라고 했다.

민대협이 주최한 위안부 합의 폐기 촉구 집회가 지난 28일 서울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민대협이 주최한 위안부 합의 폐기 촉구 집회가 지난 28일 서울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전날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한국에 대한 쓴소리를 했던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중의원 의원도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편이다.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간사장이기도 한 그는 기자들에게 "한국 국내 문제를,한국 정부내에서 해결해야할 과제를 일본으로 넘기는 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정권은 처음부터 위안부 합의를 부정하는 식으로 선거를 치렀다"며 "비록 선거때는 그랬다 하더라도 정권을 잡고 정부를 담당하게 됐다면 문제를 해결하고 수습하는 역할로 돌아서는게 정치의 도리"라고 주장했다.

또 "설사 국민적인 합의가 없더라도, 국민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정권을 잡았으면 문제를 수습해야한다"며 "이걸 진짜 뒤집거나 백지로 돌리려한다면 그건 합의를 휴지로 만드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를 오랫동안 취재해온 일본 언론의 기자는 "온건한 성격으로,한국을 잘 아는 그가 그렇게 한국 정부를 비판한 건 이례적"이라고 했다.

위안부 TF의 보고서 발표와 문 대통령의 입장 발표가 이어지는 이틀 동안 일본 사회의 반응 중 과거와 다른 건 그동안 한국에 우호적이던 지한파나 친한파들의 시선이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입장이던 마이니치 신문도 28일자 사설에선 "위안부나 지원단체에 대한 박근혜 전 정권의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후임 정권이 떠안고 이어받아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이란 정부간 약속은 정권교체를 이유로 간단히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가와무라 의원의 주장과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지난 27일 서올 중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5개월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7일 서올 중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외교부장관 직속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오태규 위원장이 5개월간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처럼 일본 내부에선 ‘당연히 한국 내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도, 한국 정부가 정치적인 목적때문에 외교 갈등으로 문제를 키운다'는 정서가 강하다.

 일본 외무성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일본 정부내 분위기를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외무성 관계자는 28일 "지난주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의 방일때만 해도 TF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합의에 도달하기 전 피해자와의 소통부족이 있었고, 청와대와 외교부간 소통도 부족했다’는 정도쯤으로 설명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보고서 내용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문제를 다뤄온 소식통은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이번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장기적인 한일관계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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