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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환상 좇는 '혼돈의 철학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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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의 폭발'은 테러리즘이란 것을 '군사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군사적인 문제'로 파악하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2001년 선택이 가져온 당연한 귀결이다. 즉 그것은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했을 때 생기는 재앙적인 일이다.

9.11테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결정은 수많은 이슬람인이 보기에는 위기를 과장한 측면이 강했고 이에 따라 미국과 이슬람권의 충돌로 이어졌다. 두 전쟁으로 알카에다가 제거되지는 못했고 미국의 안보도 이전과 비교해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없게 됐다.

이 전쟁은 두 지역에서 '킬링 필드'를 열었지만 미군의 희생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전쟁이 돼가고 있다. 아무도 예상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1년만 해도 인명 살상은 알카에다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이 살상 행위가 압도적인 규모로 맞은편에서 가해져 셀 수 없이 많은 탈레반 군인과 아프간인이 주검으로 변해갔다.

올해도 시작은 같았지만 상황이 변했다. 미국은 더 이상 첨단 병기와 제공권 우위를 바탕으로 총맞을 걱정없는 안전 지대에서 공격을 할 수 없게 됐다. 지상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2천3백만 이라크인에게 둘러싸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이는 베트남전 이래 미군이 피하려고 갖은 애를 써왔던 최악의 조건인 것이다.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는가, 사살했는가. 외견상으로 승리했다고 할 수 없으며 승리라고 규정할 만한 것도 없다. 미국은 승리를 선언했지만 테러리즘에 대한 승리는 아닌 것이다.

재건된 경제를 바탕으로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돌아가게 하겠다? 승리의 모양새는 갖췄는지 모르지만 내실까지 넘본다면 어림도 없다. 비록 이라크가 잠잠하더라도 말이다.(전쟁을 주도한) 네오콘(neo-conservatives:신보수주의파의 약자)은 파괴가 창조의 모태라고 믿었다. 그들은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이 승리라고 생각했다.

'타격과 정복'개념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게 안겨준 것은 실패밖에 없지만 그들은 샤론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악의 힘을 분쇄하는 것이 미국의 진정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환상이었지만 그들은 파괴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근원적인 힘을 해방시켜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네오콘 사상의 지적 온상이었던 트로츠키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천년왕국설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자신을 신이 보낸 인류 구원의 메신저라고 생각한 우드로 윌슨 미국 전 대통령을 계승한 감상적인 이상주의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발상은 너무나도 미국적이다.

그들은 또 소련 붕괴로 등장한 '마피아 자본주의'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앨런 그린스펀과 비슷하다('마피아 자본주의'란 사유화된 국영 기업을 특정 계층이 독점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을 지적함). 그린스펀은 공산주의 체제 붕괴 후 자동적으로 시장경제 체제가 세워질 것으로 예측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리처드 펄 전 국방자문위원장 등 네오콘들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면 자동적으로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꽃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사회 기반의 파괴는 이상적인 변화는커녕 혼란만 가중시켰다.

미국은 이라크 내에서 자신들과 유엔이 위협받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가 이라크 재건에 참여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떤 전략이 가능한가. 이런 상황까지 몰고간 워싱턴의 '혼돈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해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승리라는 환상을 좇아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전쟁을 찾아 헤매는 등 상황을 다음 단계로 상승시키는 것이다.

워싱턴 정치인들에겐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 후세인을 찾아 사살한 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노력에 불만만 터뜨리고 감사할 줄 모르는 국민을 위해 미국이 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선언하고 떠나는 것이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정용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