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불꺼진 창 … 절반 넘게 빈집, 전세도 매매도 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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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등 개발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가 속속 완공하고 있으나 빈집이 넘쳐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각종 개발 바람을 업고 쏟아져 나온 아파트들이 과잉공급의 후유증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늘어나는 '불 꺼진 창'=지난달 18일 충북 청원 오창단지에서 첫 입주한 I아파트(818가구)는 입주율이 10%대다. 계약자 서모(38)씨는 "전세로 내놔도 찾는 사람이 없어 비워둘 판"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팔면 양도세를 많이 물기 때문에 서씨는 어떻게든 연내 이 아파트를 처분할 생각이다. 올해 오창단지에서만 8000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어서 급매로 내놓지 않는 한 팔릴 가능성은 작다.

충남 천안 일대는 몸살을 더 많이 앓고 있다. 지난해 8월 입주한 천안 안서동 E아파트는 568가구 중 100여 가구가 비어 있다. 지난해 11월 완공한 천안 직산 S아파트도 입주율이 60%대며 비슷한 때 집들이한 충남 아산시 모종동 H아파트는 40% 정도만 찼다. 천안 D부동산 관계자는 "지난해 천안.아산에서 입주한 아파트 중 절반도 못 채운 단지가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 충청권에서는 올해 5만 가구나 또 입주한다.

수도권 개발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지난해 11월 입주한 V아파트 등은 입주율이 60%대에 머물고 있으며 파주 교하지구의 S아파트는 20%대다. 교하지구 K공인 관계자는 "서울 투자자들이 프리미엄을 붙여 팔려고 하나 사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발목 잡힌 외지인 투자자=지방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는 건설업체들은 각종 재료를 내세워 서울과 수도권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실제 오창 D아파트의 경우 청원군 계약자는 6.2%에 불과하고, 조치원의 A아파트도 외지인 계약자가 75%나 된다. 우림건설 관계자는 "충청권에서는 행정도시 개발계획을 등에 업은 아파트가 2004년 하반기에만 3만여 가구가 쏟아졌는데 절반 이상이 외지인 투자자들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시장 상황도 나빠졌다. 8.31 대책으로 다주택자의 세금 부담이 늘자 분양받은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투자자가 급증했다. 거주할 목적으로 분양받은 일대 실수요자들도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못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자금조달 계획 없이 분양받은 투자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건설사들이 분양 촉진을 위해 내걸었던 중도금 무이자 대출, 이자 후불제 등이 이제는 독이 됐다. 2003년 말 천안 S아파트 45평형을 2억4000만원에 분양받은 김모(43)씨는 중도금.잔금 연체이자(이자율 연 11~16%)에다 관리비까지 더해 한 달에 200만원가량을 건설사에 내야 한다.

◆당혹스러운 건설업체=잔금을 받지 못하는 건설업체도 다급하다. D건설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대전에서 입주한 1000가구의 단지에서 520여 가구가 입주하지 못해 잔금 320억여원을 못 받고 있다"고 말했다. K건설은 올해 충청.영남권에서 입주하는 자체사업장 5000여 가구의 아파트에서 입주기간 내(보통 한달) 입주율이 50% 이하로 떨어질 경우 잔금 미회수 금액이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컨설팅업체인 이넥스플래닝 길연진 대표는 "정부의 충청권 띄우기에 편승해 마구 공급한 건설업체나 묻지마 투자에 나선 소비자나 제 발등을 찍은 격"이라며 "공급과잉의 후유증이 1~2년 안에 해소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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