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자회사 셋 합병 지주사 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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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태광그룹이 주력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는 자회사 3곳을 합병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다. 총수 일가의 지배 체제를 강화하고, 옥죄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그룹 이끌게 된 한국도서보급 #지분 92.9% 총수 일가 지배력 커져

태광그룹은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 투자부문·쇼핑엔티 등 3개사를 합병한다고 26일 공시했다. 한국도서보급은 대한화섬과 티캐스트·흥국증권 등을, 티시스는 동림건설과 에스티임·서한물산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의 합병 후 잔존 법인은 한국도서보급이다. 이 회사는 앞으로 태광그룹을 이끄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된다. 합병 예정일은 내년 4월 1일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로써 태광의 지배구조는 ‘이호진 전 회장 일가→한국도서보급→태광산업·대한화섬’으로 수직 계열화됐다. 이 전 회장 일가는 한국도서보급의 지분 92.9%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외부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지 않고도 흥국생명 등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한 채 지배구조 개편에 성공했다.

특히 지주사인 한국도서보급은 이 전 회장과 아들 현준씨가 지분을 절반씩 보유 중이라 3세 경영 승계의 밑바탕도 마련하게 됐다. 50대 중반인 이 전 회장은 오랜 수감 생활로 건강이 좋지 못하다.

태광그룹의 이번 조치는 지난 6월 일감 몰아주기와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해 “자발적으로 개혁하라”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주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9월 “그룹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12월 정기국회 법안 심사 때까지가 1차 데드라인”이라며 “12월까지 긍정적 변화나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구조적 처방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태광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이 끝나면 계열사 수는 26개에서 22개로, 총수 일가 보유 기업은 7개에서 1개로 줄어든다”며 “이 전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티시스 등 계열사 간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모두 해소된다”고 지배구조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태광그룹에 이어 어떤 다른 대기업집단이 공정위 요구에 답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취임 때부터 지목했던 현대차그룹의 고민이 가장 깊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의 지분 6.96%와 현대차 지분 5.17%를 보유해 그룹을 지배 중이다. 정 회장 일가가 기아차가 보유 중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면 순환출자 고리는 끊어진다. 다만 약 4조원가량의 현금이 필요해 부담이 크다.

현대모비스를 투자와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해 지주회사로 세우는 안도 거론된다. 29일 창립기념일에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증권 업계에선 전망하고 있다.

롯데는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지주사로 전환하고, 호텔롯데를 상장시켜 일본 롯데의 지배력을 떨어트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재용 부회장의 예기치 못한 구속으로 4월 지주회사 전환 계획을 철회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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