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남 북한 대사 "아직 대화할 조건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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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를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대사가 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걸어나왔다. 본지 취재진이 우리말로 질문하자 그는 말문이 터진듯 불만을 털어놓았다.

유엔 안보리 장관급 회의서 북미 격돌 #틸러슨 "위협적 행동 지속 중단 필요' #자성남 "북은 책임있는 핵보유국" #유엔총장 "남북한 대화채널 재건해야"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는가.
“없다.”
-어떻게 하면 대화가 가능하겠나.
“우선 첫째 대조선 적대정책 철회해야되고, 그 행동을 보여줘야 되고, 철회한다는거.”
-미국 측에서는 한때 전제조건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했는데.
“무조건 대화하자면서도 우리한테는 계속 압력과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어떤식의 제재를 말하는 건가. 유엔? 미국?
“유엔에서 제재, 미국에서 제재, 둘다.”
-그럼 그 제재를 없야야지만 대화를 하겠다는 말인가.
“네. 그런 제재를 받으면서 우리가 대화마당에 나갈 수는 없죠.”
-미국이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지금은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말인가.
“네 아직 대화할 조건이 아닙니다.”

실제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장관급 회의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분명한 입장차이를 드러내며 맞부딪혔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비확산 및 북한’을 주제로 장관급으로 진행됐다. 이날의 대립양상은 북측이 전날 이례적으로 안보리 회의에 이해 당사국으로서 참석을 신청하면서 예고됐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먼저 비핵화의 포문을 열었다.  최근 북측과의 ‘조건없는 대화’를 주장했던 기조에서 한발 물러난 틸러슨 장관은 “북한과의 대화가 이뤄지기 전에 위협적 행동의 지속적 중단(sustained cessation)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며 대화의 문을 여전히 열어놓고 있지만 전제조건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5일 유엔 안보리 회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5일 유엔 안보리 회이 이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틸러슨 장관은 또 “북한과의 전쟁을 추구하거나 원하지 않는다”고 한발 다가서면서도 “그러나 방어를 위해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왔다”면서 분명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반격에 나선 자성남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며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안보리 15개 이사국의 1차 발언이 마무리된 후 발언권을 얻은 자 대사는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면서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한 북한 자성남 주유엔 북한대표부 대사. [연합뉴스]

15일 유엔 안보리 회의에 참석한 북한 자성남 주유엔 북한대표부 대사. [연합뉴스]

그는 “북한은 핵무기와 (관련) 기술의 불법적인 이전을 막을 절대적으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비핵화를 주제로 하는 협상테이블에 나올 이유가 없고, 핵 비확산 문제 정도는 협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에 틸러슨 장관과 12월 안보리 의장국 자격으로 이날 회의를 주재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은 “국제사회가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해 당사국 자격으로 한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조현 외교부 제2차관 또한 “어떤 경우에도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한국대표로 참석한 조현 외교부 제2차관. [EPA=연합뉴스]

한국대표로 참석한 조현 외교부 제2차관. [EPA=연합뉴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오해가 충돌로 확대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남북 간 및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포함해 북한과 즉각 소통채널을 재건,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위험한 레토릭과 소통채널의 부족 등으로 위험이 증폭되고 있다”면서 “(대화의 연장선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북측의 참가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유엔 안보리 회의에 앞서 악수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렉스 틸러슨 미국무장관. [AFP=연합뉴스]

유엔 안보리 회의에 앞서 악수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렉스 틸러슨 미국무장관. [AFP=연합뉴스]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대화가 시급하다는 견해는 대체로 일치했다. 그러나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미국과 일본은 더 강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했다.

중국 측 대표로 나선 주유엔대표부 우하이타오 차석대사는 “관련 당사국이 군사훈련과 무력시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평화에 대한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면서 “협상 가능성은 여전하며, 무력사용 옵션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북한은 안보에 직접적 위협을 느끼는 한 결코 핵 프로그램을 자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확실하다”면서 미국을 겨냥해 한반도 주변에서의 군사훈련을 멈출 것을 주장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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