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주말 골프 인사이드] 우즈·박성현 파4홀 1온 장타쇼 보기 힘들어지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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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골프공 탄성 줄이겠다는데 

타이거 우즈는 골프공의 거리를 덜 나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골프 규제기관들은 선수들만 거리가 덜 나가는 공을 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앙포토]

타이거 우즈는 골프공의 거리를 덜 나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골프 규제기관들은 선수들만 거리가 덜 나가는 공을 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앙포토]

‘The filth’(쓰레기, 도덕적 타락).

최근 몸 좋아진 장타 괴물 부쩍 늘어 #거리 너무 나가 코스 전장 계속 늘려 #비용·환경 등 악화되자 규제 추진 #프로는 덜 나가는 공 쓰도록 할 듯 #골프 경기장 호쾌한 볼거리 줄고 #프로와 같은 용품·샷 욕구도 꺾여

19세기 중반 골프공 제조업자들은 새로 등장한 신소재(고무) 골프공을 이렇게 불렀다. 고무가 나오기 이전 골프공은 소가죽에 거위 털을 우겨 넣어 만들었다. 기술과 시간이 필요했다. 공 하나 가격이 드라이버 값이었다.

반면에 고무공은 제조가 쉽고 가격이 쌌다. 그 ‘쓰레기’ 때문에 골프공 제조업자들의 이익이 줄었다. 당시 골프공 제조업자들은 프로선수이기도 했다. 영향력이 있었다. 그들은 “쓰레기로 하는 것은 골프가 아니다”고 했다. 아이들을 풀어 골프 코스에 잃어버린 ‘쓰레기’를 주워오게 해 화형식도 했다. 마녀사냥으로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 없었다. 싸고 재활용도 가능한 고무공은 들불처럼 번졌다. 그러면서 골프가 달라졌다. 저렴해진 공 때문에 귀족들의 놀이였던 골프는 대중 스포츠로 발전하게 된다.

공이 바뀌자 클럽도 변했다. 깃털공 시대의 주요 클럽은 롱 노즈(long nose) 우드다. 아이스하키 스틱처럼 헤드가 길쭉해 이렇게 불렀다. 고무공을 얇은 롱 노즈 우드로 치면 헤드 페이스가 부러지기 쉬웠다. 그래서 지금처럼 헤드가 두툼한 우드가 나오게 됐다.

아이언도 고무공 때문에 일반화됐다. 고무공은 런이 많아 거리를 내기에 좋았지만 그린을 훌쩍 넘어가기도 했다. 골퍼들은 그린에 공을 세우려면 스핀을 걸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언으로 찍어치는 게 좋다는 걸 알아냈다. 이전 깃털공 시절에도 아이언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공이 찢어질 위험이 컸기 때문에 트러블 상황에서만 쓰는 웨지 비슷한 클럽이었다.

고무공은 스윙도 바꿨다. 이전 공은 약하고 탄성이 작아 부드럽게 쓸어 쳐야 했다. 고무는 찍어쳐도 상관이 없었다. 찍어치려면 이전의 플랫 스윙으로는 불가능했다. 스윙 궤도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고무공은 딤플, 고무줄을 감은 공, 코어를 비롯한 다층 구조 등으로 발전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공이 바뀌면 골프가 변했다.

요즘 이 공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골프공의 거리가 너무 많이 나가서 문제다. 거리 증가에 따라 코스 전장이 길어져야 하기 때문에 라운드 시간도 늘어난다. 토지, 물 등 관리 비용이 증가한다. 넓은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 자연 파괴도 심해진다.

골프가 원래 골프에서 멀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벤 호건은 1940~50년대 마스터스 15번 홀에서 두 번째 샷에서 주로 1번 아이언을 썼다. 파5인 이 홀은 호수 바로 뒤에 그린이 있다. 가장 치기 어렵다는 1번 아이언으로 물 건너 그린에 공을 세우려면 정밀한 스윙과 더불어 긴장감을 이겨낼 정신력도 필요했다. 올해 마스터스 우승자인 세르히오 가르시아는 이곳에서 8번 아이언으로 2온을 했다. 샷 거리가 늘면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나 오거스타 내셔널 같은 전통 있는 명문 골프장들이 예전 같지 않다.

다른 스포츠는 그런 걱정이 없다. 좋은 공이 나와도 경기장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 본질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야구 타자의 힘이 세졌다면 투수의 볼 스피드도 올라갔다. 축구 공격수가 날렵해졌다면 수비수도 민첩해지고 골키퍼는 커졌다.

골프는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 아니다. 사람이 공을 비롯한 장비를 가지고 코스와 맞서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코스가 밀리고 있다. 그 이유가 공 때문만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사람의 몸이다.

골프공의 초속은 1930년대부터 규제를 받았다. 2003년 이후 규제가 매우 꼼꼼해졌다. 이후 공의 탄성이 높아지지 않았다. 반면에 몸이라는 장비는 진화하고 있다. PGA 투어 상금이 커지면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대거 유입됐다. 그들이 장타 스윙의 비밀을 알아낸 과학적인 교습가와 손잡고 나타났다.

※ 1993년부터 2000년까지는 드라이버 등 클럽에 의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볼에 의해 거리가 늘었다. 이후 용품 규제를 통해 거리 증가를 묶어놨다는 그래프다. 그러나 2017년 다시 큰 폭으로 거리가 증가해 규제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 1993년부터 2000년까지는 드라이버 등 클럽에 의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볼에 의해 거리가 늘었다. 이후 용품 규제를 통해 거리 증가를 묶어놨다는 그래프다. 그러나 2017년 다시 큰 폭으로 거리가 증가해 규제강화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골프협회 등이 발간한 ‘샷 거리 리포트’에 따르면 PGA 투어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003년부터 2016년까지 4.1야드 증가하는 데 그쳤다. 1년에 0.2야드 정도다. 그러나 300야드를 넘게 치는 장타자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2년 한 명이었는데 2016년 27명이 됐다. 평균거리가 늘었다기보다는 장타를 치는 이른바 ‘괴물’ 선수들이 증가한 것이다. 2017년엔 300야드를 넘게 치는 괴물들이 43명으로 늘어나면서 평균거리도 급증했다. 반면에 상금이 크지 않은 일부 투어의 평균 샷 거리는 오히려 줄었다. 괴물 선수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골프공은 최근 생긴 샷 거리 증가에 끼친 영향이 적다. 그렇다 해도 멀리 날아가는 것은 선수가 아니고 공이기 때문에 규제기관은 볼에 뭔가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2원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프로 선수는 나무, 아마추어는 알루미늄 방망이를 쓰는 야구처럼 선수는 거리가 적게 나가는 공, 일반인은 현재의 공을 쓰는 방안이다.

이원화된다면 긍정적인 결과만 기대할 수는 없다. 야구 공의 탄성을 줄이면 홈런이, 농구 골대를 높이면 덩크슛이 줄어들 것이다. 골프공의 탄성을 줄이면 파4홀 1온 같은 놀라운 퍼포먼스가 확 감소하게 된다. 아기자기한 레이업슛은 많이 나오겠지만 덩크슛은 보기 어렵다. 눈이 번쩍 뜨일 퍼포먼스를 보러 경기장에 가던 사람들이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타이거 우즈와 똑같은 용품을 쓰고 싶어 하는 골퍼들의 욕망도 해소하기 어려워진다. 공이 바뀌면서 골프라는 스포츠가 변했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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