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타이베이=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동남아 불법체류 노동자 불구 #비자발급 요건 완화해 여행자 모아 #곳곳에 태국어·베트남어 안내문과 #'할랄'식당, '무슬림 프렌들리' 호텔 #서민야시장 상인들도 QR코드 사용 #외국인에게 음식 원산지, 조리법 소개
지난해 1월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취임하자 중국은 단체관광객 송출을 중단하며 경제적 압박에 나섰다. 중국 관광객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은 대만 여행업자들은 지난해 9월 12일 타이베이의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숙박업·관광버스업 종사자와 여행 가이드 등으로 이뤄진 13개 노조 단체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차이 총통에게 중국 단체관광객 송출을 복원할 대책만 촉구한 것이 아니라 제3의 대안도 제시했다. 줄어든 중국 단체관광객만큼 다른 나라 관광객을 늘릴 수 있도록 동남아 10개국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도 요청했다. 하지만 인구 2355만 명의 대만에는 이미 동남아 출신을 중심으로 약 3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가 있다. 불법체류자 증가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해 비자 규제 완화는 예민한 주제였다.
그럼에도 국가 정책과 국민 경제, 자존심과 밥그릇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만 정부의 선택은 ‘동남아 관광객’ 확대였다. 대만 관광국의 황이핑(黃怡平) 국제과장은 “대만은 올해부터 ‘신남향정책’을 바탕으로 동남아 지역과 교류를 확대하면서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해 해당 지역 관광객을 늘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남아를 오가는 항공로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아울러 인터넷과 관광지 현지 안내문을 중국어·영어·한국어에 더해 태국어·말레이인도네시아어·베트남어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 과장은 “무슬림(이슬람신자) 인구가 많은 동남아 지역의 특성에 맞춰 수출용 할랄 산업을 키우고 동시에 국내 식당과 호텔을 ‘무슬림 프렌들리’로 전환하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할랄은 코란 규정에 맞춰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가리킨다. 대만을 다니면서 ‘할랄’ ‘무슬림 프렌들리 업소’ 마크를 붙인 호텔과 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민간의 노력은 더욱 적극적이다. 대만소상인단체인 아태연맹총상회(亞太聯盟總商會)의 린팅궈(林定國) 이사는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야시장부터 ‘글로벌 프렌들리’ ‘무슬림 프렌들리’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타이베이의 닝샤(寧夏) 야시장을 찾았더니 중간중간에 영어는 물론 태국어·베트남어 안내가 붙어 있다. 뿐만 아니고 야시장 포장마차에 QR코드까지 붙여 놓고 있었다. 스마트폰 앱에 이를 갖다 댔더니 팔고 있는 대만 특산 요리의 재료 원산지와 조리법이 중국어와 영어로 소개됐다. 린 이사는 “앞으로 동남아 언어를 포함한 다국어 지원으로 확대할 방침”이라며 “손님들에게 플라스틱 포장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친환경 스테인리스 도시락을 배부해 음식을 사서 숙소에서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보산업(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만을 ‘동남아 관광객에게 친절한 나라’로 느끼게 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대만 무역국의 리관지 부국장은 "대만을 한번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대만이 '친절하고 재미있는 나라' '무슬림에게 개방적이고 편안하게 해주는 나라'로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통해 입소문을 내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은 물론 동남아 인재가 대만에서 공부하고 능력을 발휘하며 대만과 지속해서 협력하게 하는 효과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대만의 국가 이미지와 매력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이야기다.
대만 서민음식체인점 ‘포모사 장’의 린전이(林振益) 브랜드 이사는 “중국 단체 관광객이 줄면서 식당의 접객 자세도 바뀌었다”며 “손님을 기다리는 ‘인기 식당’에서 탈피해 고객을 감동하게 하는 ‘마음의 식당’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모사 장은 1960년 자전거에 재료를 싣고 다니며 서민 음식러우판(肉飯, 졸인 고기덮밥)을 팔던 노점에서 출발해 현재는 대만은 물론 일본까지 지점을 내는 서민 음식 체인이다.
대만은 이렇게 정부부터 야시장 상인까지 나서서 새로운 관광객을 확보하려고 시도하면서 중국 의존증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중국의 일방적인 경제보복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동남아에서 대안을 찾아 나선 모습은 중국에 대응하는 대만인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국공내전 패배로 1949년 7월 정부를 대만의 타이베이로 옮긴 중화민국(대만)은 그해 10월 들어선 중국으로부터 끊임없는 공세에 시달렸다. 중국은 58년 저장(浙江)성 해안에 인접한 대만령 진먼다오(金門島)에 포탄 47만 발을 퍼부은 것을 시작으로 대만에 공세를 계속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우며 경제발전에 나선 중국은 92년 11월 홍콩에서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海基會)와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海峽會)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구두 합의하면서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중국은 이후 대만의 역대 정권에 ‘92원칙’으로 불리는 이 내용의 재확인을 계속 요구해 왔다. 2000~2008년 대만 독립 성향을 드러냈던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 총통 집권기에 양안관계는 얼어붙었다.
2008~2016년 국민당 소속 마잉주(馬英九) 총통 시절에는 다시 훈풍이 불었다. 2010년 사실상 ‘양안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체결되면서 양안 교역 규모는 2009년 1062억 달러에서 2014년 1983억 달러로 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만의 중국 의존이 심화했다는 점이다.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독립을 강력히 주장하는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가 당선하자 중국은 대만의 중국 의존을 이용해 경제 제재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단체관광객 송출 제한 외에 중국 수출상품 생산에 필요한 대만산 부품, 소재 수입과 인적 교류는 줄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