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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중국 전방위 경제 보복 2년 … 대만 ‘신남향정책’으로 당당히 맞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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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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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강소국론 

대만 총통부. 대통령 공관에 해당한다. 2016년 9월 이곳에서 시위를 벌인 관광업 노조원 2만여 명은 중국의 단체관광객 송출 제한 해결과 함께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불러들일 비자 면제 조치를 건의했다. [채인택 기자]

대만 총통부. 대통령 공관에 해당한다. 2016년 9월 이곳에서 시위를 벌인 관광업 노조원 2만여 명은 중국의 단체관광객 송출 제한 해결과 함께 동남아시아 관광객을 불러들일 비자 면제 조치를 건의했다. [채인택 기자]

중국은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비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한국에 경제 보복 등 갖은 압박을 가해 왔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과 관련해 외교적 ‘무례’ ‘홀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드와 관련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월 30일 국회 외교통일위의 외교부 국감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한·미·일 안보 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3대원칙을 밝혔다.

‘대만 독립’ 주장하는 차이 총통 되자 #중국, 단체관광객 중단 등 경제 보복 #대만 “양안관계 일희일비 않는다” #동남아와 경협, 중국 의존도 줄여 #“민의에 따른다” 원칙으로 대응 #필수 대만산 부품 대륙 수출 늘고 #관광객 제한에도 900만 명 왕래

정부는 갈등 봉합을 위한 노력이며 이전부터 유지하던 원칙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치문제를 경제 압박으로 해결하려는 중국의 막무가내 행태 앞에 우리가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굽히고 들어가 주권 사안인 안보 입지를 스스로 좁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국제 규범에 정면으로 대항해 정치적 불만을 경제 보복으로 풀려는 중국의 고압적이고 비합리적인 처사를 합리화해 주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적절한 처리”를 촉구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사드 문제를 계속 불씨로 남겨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중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대만 타이베이의 자유광장.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존중과 배려가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채인택 기자]

대만 타이베이의 자유광장.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존중과 배려가 있는 나라를 의미한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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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중국으로부터 대대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대만(중화민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중국은 2016년 1월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 후보 차이잉원(蔡英文)이 당선하자 전방위 경제 압박에 나서고 있다. 차이 총통이 56.1%를 득표해 31% 획득에 그친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자 중국은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중국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침체된 대만 경제를 바꿀 수 없다. 독립 노선을 추구하면 죽음의 길을 걷는 것이다”는 사설을 실었다. 중국의 뜻을 거스르면 경제 보복을 하겠다는 압박이다.

영문 관영매체 차이나데일리도 “중국은 민진당이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92공식을 수용해야만 대화할 것”이라며 “대만이 독립을 추진하는 것은 전쟁을 의미한다”는 사설을 내놨다. ‘전쟁’을 위협하며 대만에 대해 사실상 선거 개입과 내정 간섭을 시도한 것이라는 지적을 부르는 내용이다.

대만 현황

대만 현황

중국 압박의 가장 가시적인 분야가 관광이다. 대만 관광국 통계에 따르면 매달 40만 명에 육박하던 중국인 관광객이 2016년 5월 처음으로 20만 명 수준(27만1478명)으로 줄었으며 지난 6월에는 처음으로 10만 명(18만9078명)대로 내려앉았다. 단체관광객 송출에서 중국 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만의 차잉 총통은 “대만 국민은 대만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정부를 선택했다”며 “대만의 민주주의 제도와 국가 정체성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그는 중국에 대해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하며, 지속 가능하고, 대등한 양안 상호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어떤 형태의 압박이든 양안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오히려 맞바람을 놓았다. 양안관계는 정치·경제할 것 없이 호혜 평등이 원칙이며, 대만에 경제 보복을 가하면 중국에도 손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대만 대륙위원회 부주임 추추이정. [채인택 기자]

대만 대륙위원회 부주임 추추이정. [채인택 기자]

이와 관련, 지난 10월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난 대만행정원 대륙위원회의 추추이정(邱垂正) 부주임(차관)은 “차이 총통 정권이 출범한 이후 중국의 압박이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압박으로 외교무대 참가를 제한받고 있으며 공식 교류가 일절 중단됐다”면서 “대륙은 심지어 관광객과 유학생 숫자까지 제한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강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그런 압박이 대만의 양안정책에 영향을 끼치느냐는 질문에 그는 “대만 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의거, 양안 정책을 민의에 따라 추진하고 있다”며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원칙을 지키는 한 양안정책은 중국 압박에 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륙위원회는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1991년 설립한 정부기관으로 대륙 관련 정책, 정보 수집과 분석, 연구와 대화 등을 맡아 한국의 통일부와 성격이 유사하다. 추 부주임은 “대륙위원회가 담당하는 양안정책은 대만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원칙을 확고히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는 87년 양안 교류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며 “양안은 지난 30년간 정치적인 대립에도 경제 부문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소개했다. 대만 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대만 대외무역(5108억 달러)에서 중국대륙(홍콩 포함)이 차지하는 비율은 30.8%(1576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대륙은 대만 수출 2803억 달러의 40.1%(11223억 달러), 수입 2305억 달러의 19.7%(453억 달러)를 차지한다. 대만은 동남아(아세안 10개 회원국)에 512억 달러(18.3%), 미국에 335억 달러(12.2%), 유럽에 262억 달러(9.4%), 일본에 195억 달러(7%)를 수출했다. 대만은 전체 무역에서 497억 달러의 흑자를 봤지만 대륙에서는 669억 달러의 흑자를 봤다.

중정기념관에 있는 장제스의 동상. [채인택 기자]

중정기념관에 있는 장제스의 동상. [채인택 기자]

민간 교류를 담당하는 해협기금회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 거주하는 대만인은 100만 명이 넘으며 2016년 중국의 단체관광객 송출 제한에도 중국인 350만 명, 대만인 570만 명이 양안을 오갔다고 밝혔다. 추 부주임은 “중국의 압박으로 양안 지도자 간 교류만 이뤄지지 않을 뿐”이라며 “중국의 경제에 필요한 대만산 부품·소재 수입이나 인적 교류 등 다른 분야는 중국 정부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부주임은 “차이 총통 취임 이후 대만은 양안관계에서 ‘평화와 현상 유지’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며 “그 바탕은 양안 인민의 기대와 국제사회의 바람, 그리고 대만의 원칙 준수”라고 밝혔다. 그는 대만 정부가 ‘1992년 양안 협상에 기초한다’ ‘중화민국 헌법과 양안관계법에 따른다’ ‘지난 30년간의 교류 성과를 소중히 생각한다’ ‘양안이 그동안 체결한 협약(23개 체결해 21개는 시행 중이고 2개는 입법부 심의 중)과 약속을 지킨다’ 등 세부 원칙을 지키고 있어 양안관계에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만 국민의 뜻은 어떤가? 대만의 신대만국책싱크탱크(新臺灣國策智庫, TBT)가 지난 4월 21일 발표한 ‘양안관계와 대만인 정체성’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잘 말해 준다. 조사는 지난 4월 17~18일 대만의 20세 이상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유효응답은 1068건이었다. 응답자의 79.9%가 ‘현상태 유지’를 지지했다. 이 중 29.6%가 ‘영원히 현 상태 유지’를, 24.4%는 ‘현 상태 유지 뒤 독립’을 희망했으며 38%는 ‘상황을 봐서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현 상태 유지가 불가능할 경우 대안에 대해 62%가 독립을, 21.2%가 중국대륙과 통일을 원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중국이 요구하는 ‘1국양제 통일’과도, 민진당 정권이 추구하는 ‘대만 독립’과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차이 총통 정권이 중국의 부당한 압박 앞에 당당할 수 있는 것도, 민진당의 공약인 대만 독립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대원칙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이베이 101층짜리 101빌딩. 대만 경제 성장의 상징이다. [채인택 기자]

타이베이 101층짜리 101빌딩. 대만 경제 성장의 상징이다. [채인택 기자]

대만의 비정파 정책연구기관인 재단법인 대만싱크탱크(臺灣智庫)의 대외정책 담당인 둥쓰치(董思齊) 국제사무국장은 “대만은 중국의 경제 보복을 계기로 오히려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프로젝트를 정부 차원에서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둥 국장은 “지난 30년 동안 양안교류로 중국 경제 가동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를 대륙에 공급하는 이른바 ‘홍색(紅色)공급망(Red Supply Chain)’의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중국과의 교역, 교류 확대를 통해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물론 눈앞의 대중 흑자에 취해 중국만 바라보고 다양한 시장이나 경제발전 전략을 마련하는 데 게을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따라 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제계가 나서 동남아시아·남아시아·대양주와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를 강화해 공동 성장을 이루는 ‘신남향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대상국가는 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10개국,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부탄 등 남아시아 6개국, 그리고 호주·뉴질랜드 등 대양주 2개국 등 18개국이다.

대만은 이를 위해 바이오테크(타이베이), 아시안실리콘밸리(타오위안), 스마트기계(타이중), 녹색산업(타이난), 방위산업(가오슝, 타이중, 화롄)의 5대 산업에 신농업과 순환재생경제를 포함하는 7대 산업을 대만 내 각 지역에서 육성하고 이를 앞세워 교류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들 산업을 살펴보면 중국과 관련이 적고 대만에 유리한 ‘탈중국 산업’이라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대만 정부는 ‘신남향정책’을 통해 이들 7대 산업을 8개국과 공동으로 키워 대중 의존도를 줄이고 미래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

대만무역국의 리관즈(李冠志) 부국장은 “신남향정책은 경제 분야에서 과도한 중국 의존도롤 줄이고 시장을 분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만은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고 자원도 많지 않지만 경제발전을 이뤘는데 이는 무역자유화와 개방화 노력, 공학도를 비롯한 인재 양성에 주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를 동남아와 남아시아 협력국에 모델로 제시하며 경제협력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대만의 상품을 사라는 것이 아니라 대만과 손잡고 기술과 산업을 함께 키워 동반성장하는 방향으로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의도다. 대만은 거대 중국의 부당한 압박 앞에서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이를 오히려 경제구조 개선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대만이 동아시아의 강소국으로 자리 잡고 있는 비결을 엿볼 수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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