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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이야기 <상> 백악관에도, 중동 호텔에도...완벽한 원추형 성탄 트리, 한국에서 갔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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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줌업 성탄절 이야기 <상> 성탄 트리 원산지는 한국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서울시청 앞 광장에 들어선 성탄 트리. 트리 앞에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알리기 위해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세워져 있다. [채인택]

서울시청 앞 광장에 들어선 성탄 트리. 트리 앞에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알리기 위해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가 세워져 있다. [채인택]

“우물쭈물하다가 이리될 줄 알았다.” 기지와 위트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문학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라고 합니다.
우물쭈물하다 올해도 막이 내리고 있습니다. 우물쭈물하다 성탄도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곳곳에 켜진 성탄 트리의 영롱한 불빛은 추억을 부릅니다. 그 불빛 아래에 서면 올 한해 겪었던 갖가지 장면이 하나둘씩 떠오릅니다. 성탄 트리는 우리에게 한해의 끝과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한국 원산 구상나무, 성탄용으로 안성맞춤 #생나무 성탄 트리 시장 80~90% 차지해 #자연적으로 끝 뾰족, 아래로 갈수록 펴져 #상엽침엽수 중 가지치기 없이 사용 가능해 #한라산, 무등산,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자생 #1904년 프랑스 신부들이 채취, 미국 학자에 기증 #윌슨, 1917년 방한해 별개 종 분류하고 이름 붙여 #서양선 임업자원-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권리 보유 #국내선 2013년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멸종위기종

성탄 트리는 멀리서 보면 조화로운 삼각형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아주 높고 우람하게 보입니다. 아래가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원추형이기 때문이겠지요.

성탄 트리는 아래로 내려올 수록 옆으로 퍼지는 원추형이 인기다. 안정감을 주면서 미적인 균형감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flickr michael]

성탄 트리는 아래로 내려올 수록 옆으로 퍼지는 원추형이 인기다. 안정감을 주면서 미적인 균형감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flickr michael]

요즘 유럽과 미국에선 성탄 시즌이 되면 생나무를 채취하거나 구매해서 집안에 성탄 트리를 장식하는데요. 특이한 것은 시장의 80~90%를 특정 종의 나무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 나무는 원산지가 한국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코리언 퍼(korean fir), 즉 ‘한국 전나무’로 불리는 나무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구상나무라고 부릅니다. 시원한 곳을 좋아해서 주로 높은 산에서 서식합니다. 한라산에선 중턱 이상의 고지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등산, 지리산, 덕유산 등지의 해발 500∼2,000m 사이의 고지대에서 자생합니다. 최근에는 속리산에서도 발견됐습니다. 한국의 토종나무입니다.

 1999년 4월 한국을 찾았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에 기념으로 식수한 구상나무. [flickr verweiledoc]

1999년 4월 한국을 찾았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에 기념으로 식수한 구상나무. [flickr verweiledoc]

그런데 왜 한국의 토종인 이 구상나무가 서구에서 성탄 트리 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을까요? 그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모양 때문입니다. 원래 성탄 트리는 소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 상록침엽수를 채취한 다음 적당히 가지를 쳐서 원추형으로 만들어 썼습니다. 원래는 원추형이 아닌데 인공적으로 그렇게 가공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구상나무는 그런 손질을 해서 원추형으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모양이 예쁜 원추형으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끝은 뾰족하고 아래로 갈수록 가지가 옆으로 펴지는 형태입니다.  성탄 트리의 전형적인 형태와 똑같습니다. 따라서 따로 가지치기할 필요 없이 바로 성탄 나무로 쓸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성탄 트리용 나무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자라기 전에 성탄 나무로 써야 합니다. 다 자라면 높이가 10~20m까지 이르는데 가지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사방으로 고루 뻗습니다. 원추형이 아니라 원정형으로 변합니다. 이에 따라 구상나무는 다 자라기 전, 아담한 상태에서 성탄 트리로 이용됩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자랑인 아부다비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 로비에 설치됐던 성탄 트리. 무슬림 국가로서 성탄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전 세계에서 찾아온 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성탄 트리를 설치했다. [flickr stefan@austria]

아랍에미리트(UAE) 수도 아부다비의 자랑인 아부다비 에미리트 팰리스 호텔 로비에 설치됐던 성탄 트리. 무슬림 국가로서 성탄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전 세계에서 찾아온 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성탄 트리를 설치했다. [flickr stefan@austria]

이렇게 성탄 트리에 딱 맞는 한국 특산 구상나무가 어쩌다 유럽과 미국까지 건너가게 됐을까요?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른바 ‘식물자원 제국주의’로 불리는 역사가 배경입니다. 제국주의 시절 서양인들은 새로운 세계에 가면 반드시 식물과 동물 등 생물자원을 살피고 연구하며 채취해서 가져가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거대한 식물원들은 사실 신대륙이나 식민지, 무역을 위해 진출한 지역에서 채취한 식물 자원을 보존하고 관찰하고 재배 시험을 하기 위해 세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한국에 온 서양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1904년 한국에서 식물자원을 채집하고 있던 프랑스인 신부들이 채취해 1907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식물학자 헨리 윌슨에게 표본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윌슨은 1917년 한국에 와서 직접 구상나무를 채취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를 분비나무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17년 열매의 모양이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하고 이를 다른 종으로 분류해 1920년 식물원 학술지에 발표하게 됩니다. 새로운 종으로서 아비스코레아나 E.H. 윌슨(Abies koreana E.H. Wilson)이라는 학명을 붙였습니다. 아비스(Abies)는 전나무 속이라는 뜻이고요. 코레아나(koreana)는 종의 이름입니다. 생물학적인 속과 종의 이름을 붙이고 맨 마지막에 발견자나 분류자의 이름을 붙이는 이런 방식은 오스트리아의 사제였던 칼 폰 린네가 만든 생물 명명법이죠. 윌슨은 줄여서 WILS라고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양으로 옮겨진 이 나무는 어느 날 성탄 나무로서의 가치를 발견한 서양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된 것입니다.

미국 백악관 앞에 들어선 성탄 트리와 주변 야경. [flickr Michael Lee]

미국 백악관 앞에 들어선 성탄 트리와 주변 야경. [flickr Michael Lee]

구상나무의 인기는 서구에서 상당하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주요 임업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독일에선 구상나무 재배가 상당한 이익을 내는 임산업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는군요. 문제는 개량된 구상나무 종자에 대한 권리를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토종식물이 해외로 유출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게다가 정작 국내에선 기후 온난화와 남벌로 멸종을 걱정하는 상황입니다.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이 2013년 한국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을 정도입니다. 생물자원과 생물 종 다양성 보존의 중요성을 함께 가르쳐 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성탄 트리를 보면서 100년 전에 해외로 이민 떠난 구상나무의 운명을 생각해봤습니다. 이젠 성탄 트리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예쁜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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