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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공무원 뽑는데 17조, 미래형 일자리엔 2.5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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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도년 산업부 기자

김도년 산업부 기자

지난 6월 고등학생에게 ‘기업가 정신’을 교육하는 핀란드 산업협회 산하 교육기관 ‘이코노믹인포메이션오피스’를 방문했다. 미코 하칼라 프로젝트 리더는 대학 입학 전 학생들에게 회계·세일즈 등을 가르치는 이유를 “관료집단이 비대해 위험 감수자가 적은 핀란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튿날 찾은 핀란드 사회보장국의 페티 혼카넨 수석연구원도 “실업수당 대상을 선별하는 관료가 계속 늘고, 복지 수혜자가 되려고 취직을 포기하거나 취업 사실을 숨기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기본소득 도입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진보정당이 ‘벤치마크’하는 핀란드의 분위기가 이랬다. 이 나라도 8.7%(지난 9월 기준)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을 기록 중이지만, 세금으로 공무원을 더 뽑는 손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1개의 노키아보다 100개의 스타트업’을 만드는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었다.

한국은 거꾸로다. 2022년까지 채용하겠다고 밝힌 공공 일자리는 81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같은 기간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창출하겠다고 밝힌 일자리는 26만개에 불과하다. 배정 예산도 초라하다. 정부는 앞으로 5년간 공무원 17만4000명을 채용하는 데 17조원을 쓸 방침이지만, 과학·ICT 분야 일자리에는 기껏해야 2조5000억원 안팎의 예산이 투입될 전망이다. 뚜렷한 예산 계획도 없어 5100억원 수준의 내년도 예산을 5년 동안 유지한다는 전제로 추산한 액수다.

정부 예산으로 보전하는 내년 한 해 최저임금 인상분만 해도 3조원이다. 이보다도 적은 돈을 5년간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인 과학과 ICT 분야 일자리 창출에 투입한다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일자리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주무부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26만명이란 숫자는 달성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어 숫자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했다”고 대답했다.

정부는 그동안 공공 일자리는 민간 부문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정부 발표를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달성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목표로 4차 산업혁명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내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해소할 정도의 일자리 목표와 전략이 없이는 한국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김도년 산업부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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