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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NHK 확 뜯어고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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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성역 없는 개혁'을 주창해 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칼끝이 공영방송 NHK를 향하고 있다.

▶비대화한 조직.채널 삭감 등 구조조정 ▶수신료 징수에 의존해 온 재원 문제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대비한 체제 개편 등 NHK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들이 도마에 올라 있다. 정치권에선 민영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 부분 민영화론 대두=NHK 개혁의 사령탑은 고이즈미 개혁의 브레인이라 불리는 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 총무상이다.

지난해 개각 때 NHK를 관할하는 총무상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월 하순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회의인 '통신.방송 방식에 관한 간담회'를 출범시켰다.

자문회의는 현재와 같은 공영방송 체제 유지가 바람직한지 등 가장 근본적인 문제부터 검토에 들어갔다. 좌장을 맡은 마쓰바라 사토시(松原聰) 도요대 교수는 "민영화도 논의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정부의 개혁방안은 '부분적 민영화'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NHK의 기능과 조직 가운데 공공성이 강한 부분은 공영으로 남겨 두고 불필요한 부분은 광고 수입과 유료 채널로 전환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는 다케나카 총무상의 지론이기도 하다. 마쓰바라 교수도 "기능을 판단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은 특수법인을 만들어 별도 제작하게 하고 그 외는 민영화하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국내에만 8개로 나눠 운영 중인 채널의 재편과 축소가 불가피해진다. 고이즈미 총리는 1일 "NHK의 채널 수가 너무 많다"며 총무성에 채널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공룡 NHK의 대대적인 기구 축소도 필연적이다.

◆ 수신료 의무 부과에도 메스=가장 큰 쟁점은 수신료 철폐 여부다. 현행 일본 방송법으로는 TV수상기를 구입한 시청자는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내야 한다. 공중파만 볼 경우는 2개월에 2790엔, 위성방송까지 함께 보면 4680엔을 내야 한다. 모든 채널에 광고가 없는 NHK의 예산은 사업수익의 96%가 수신료 수입에서 나온다.

다케나카를 비롯한 개혁론자들은 수신료 징수가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민영방송과의 경쟁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하는 불공정한 제도로 보고 있다. 자문회의는 스크램블 방송으로 전환하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스크램블 방송이란 별도의 시청료를 내는 가입자만 정상적으로 시청할 수 있게 하고 미가입 시청자에겐 화면과 음성을 찌그러뜨려 송출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2011년부터 완전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할 계획이어서 기술적으로 어려움은 없다.

◆ NHK의 자업자득=NHK가 개혁의 도마에 오른 것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다. NHK는 한때 영국의 BBC와 함께 공영방송의 모범으로 불려왔으나 2004년 직원들의 비리가 잇따라 폭로되면서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연출자가 제작비를 부풀려 신청해 착복하고 해외특파원이 출장비를 엉터리로 챙긴 일이 숱하게 드러났는데 감사는 솜방망이에 그쳤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수만 건 수준이었던 시청료 납부 거부 건수가 지난해 말까지 128만 건으로 폭증하고 에비사와 가쓰지 회장이 물러났다.

NHK는 1월 직원 수 10%(1200명) 삭감과 조직 통폐합 등 자체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시청자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NHK 개혁은 자문회의의 최종 보고서가 나오는 6월께면 구체적 방안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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