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위에 피어난 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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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14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푸가의 기법’ BWV 1080 중 제14곡 자필 악보 두 번째 페이지. Mus.ma.autogr.Bach P200 ⓒStaatsbiblothek zu Berlin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푸가의 기법’ BWV 1080 중 제14곡 자필 악보 두 번째 페이지. Mus.ma.autogr.Bach P200 ⓒStaatsbiblothek zu Berlin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눈으로만 들을 수 있는 두 개의 줄로 연결된 온음표와 이분음표를 기보하기를 좋아했다.” (파스칼 키냐르)

유지원의 글자 풍경

책의 도시에 살던 음악가들

라이프치히는 출판인쇄업이 번성한 책의 도시였다. 나는 이 도시의 그래픽 구역(Graphisches Viertel)에 살았다. 이 구역에는 구텐베르크 거리가 있고, 독일 출판사들의 이름을 딴 인젤 거리, 레클람 거리 등이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음악가들도 문사 성향이 강했다. 학문과 글과 인쇄와 출판에 관심이 많았다. 내 아파트에서 두 골목 옆에는 로베르트와 클라라 슈만의 신혼집이 있었다. 슈만은 음악 비평가로도 문필을 날렸다. 아파트 뒤쪽으로는 브록하우스의 자택이 있었다. 영국에 브리태니커가 있다면 독일에는 브록하우스 백과사전이 있다. 그 집에서 바그너는 젊은 니체를 처음 만났다. 길 건너 거리 끝으로는, 부유했던 멘델스존의 저택이 있었다. 그는 음악학자로도 이름이 높았다. 근방에는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어텔’이라는 유럽 굴지의 악보 출판사가 있다. 그리그는 악보를 출판하려 이 도시를 방문하곤 했다.

악보의 명가 브라이트코프 가문과 친분을 가지며 동판 인쇄를 배운 유명한 작가가 있었다. 괴테였다.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괴테는 “라이프치히의 법대생 시절에 정교한 동판 예술을 배웠으며, 실제로 출판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에 이르렀다”고 자랑했다.

그로부터 약 15년 전, 동판 인쇄를 직접 하려 했던 또다른 다재다능한 예술가가 있었다. 바흐였다.

바흐 씨의 그림과 글씨 솜씨

바흐의 가계에는 음악적 재능뿐 아니라 회화적 재능도 흘러서, 많은 음악가 사이에 몇몇 화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예술가들의 필체를 필적학으로 고찰한 로베르트 암만에 의하면, 슈베르트의 가느다란 필체는 시인의 성향인 한편, 바흐의 견고한 필체는 화가의 성향에 가깝다고 했다. 바흐의 작곡법 역시 시각적ㆍ건축적 구조가 두드러진다.

바흐는 글씨와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바흐의 필체는 크고 두꺼우며 형태가 아름답다. 생동감에 넘치고 꽉 차있으며, 공간 구조가 안정적이다. 이 육중한 필적에는 단호하고 강직한 성품이 드러난다.

바흐의 노년에, 아들 칼 필립 엠마누엘은 아버지가 작곡 중이던 ‘푸가의 기법’을 동판으로 인쇄해보자고 제안 했다. 이에 아버지 바흐는 값비싼 동판 인쇄를 위한 악보 밑그림을 동판 제작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들려 마음먹었다.

예순넷의 바흐는 동판의 밑그림이 될 자필 악보를 또박또박 써나갔다. 악보를 곱게 작성해 출판하고자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꽃송이와 열매가 달린 장식 그림도 그려넣었다. 자세히 보면 옅은 밑그림을 조심스럽게 그린 후에 잉크로 마무리했다. 바흐 특유의 획이 굵고 대범한 필체의 성격이 그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음이 침묵한 곳에서 태어난 물고기·달팽이…

옛 악보의 피날레 장식들 ⓒKarin Paulsmeier

옛 악보의 피날레 장식들 ⓒKarin Paulsmeier

바흐뿐 아니라 많은 작곡가가 악보 위 ‘들리지 않는’ 여백에 그림을 그렸다. 특히 피날레 장식들이 다채로웠다.

곡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리는 가장 단순한 형태는 마디에 선을 하나 더 그어서 겹세로줄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작곡가들은 finis나 f 등의 표시로 피날레를 확실히 알렸다. 이 f를 구불구불 그리기도 하고, 작곡을 마친 후 손이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대로 길게 잡아끌기도 했다. 그러다가 의식적으로 예쁘게 그리기 시작했다. 옛 악보들에서는 음악이 멈추던 곳에 이렇게 꽃이 피었다가, 급기야 물고기가 헤엄치고, 달팽이가 기어가고, 사냥개가 토끼를 쫓아가기에 이르렀다.

장식용 인쇄 활자는 ‘플러런(fleuron)’, 즉 꽃이라고 부른다. 출판인쇄가의 꽃이다. 이런 장식은 아름답지만 비용이 들었다. 독일에서는 1920년대 이후 인쇄에서 장식을 배격하는 움직임이 싹튼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후 정치와 경제가 모두 불안했던 상황에서, 젊은 디자이너들은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을 깊이 고민했다. 호사스러운 도서를 만드는 것은 당시 사회의 요구에 어긋났다. 이렇게 나타난 것이 글자의 본질에 주력한 이성적인 모더니즘 타이포그래피였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에서도 여전히 100여 년 전 모던 타이포그래피의 강령이 지배적이다. 기초 과정에서는 학생들이 글자 본연의 성격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시선을 더 끄는 장식ㆍ이미지ㆍ모션을 의식적으로 배제한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장식에 드는 시간과 경제적 비용이 다시 낮아졌다. 이제 장식을 향한 동서고금 인간의 마음을 조금은 여유롭게 돌아봐도 좋지 않을까?

뇌 신경과학자 이대열 교수의 저서 『지능의 탄생』에 따르면, 최근 인지과학에서는 직관과 감정을 이성 못지 않게 중요한 사고 능력의 본질로 본다. 이 책에서 당장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잉여 행동에 가치를 부여한 설명이 특히 흥미롭다. 아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행동을 이리저리 하다 보면 그 경험이 축적되어 언젠가 쓸모가 생긴다는 것이다. 잡다한 행동을 마구잡이로 해보는 호기심과 장난끼, 놀이의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보면 낙서를 하는 마음도 나무랄 것만은 아니다. 다만, 다른 작곡가들의 낙서에 비해 바흐의 장식 그림에는 더 이성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는 그림 실력을 드러내고 싶었고, 또 악보가 아름다워서 더 잘 팔리기를 바랐다. 뿐만 아니다. 바흐는 피날레가 아니라 세 장짜리 악보의 두 번째 장, 즉 악곡의 중간에 물결처럼 둥글게 흐르며 이어지는 장식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왼쪽 마디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른손 부분 쉼표에 답이 있다. 왼손이 바쁘게 연주하는 동안, 자유로워진 오른손으로 악보를 넘기라는 작곡가의 배려가 담긴 것이다.

자필 악보는 작곡가라는 존재의 직접적 흔적이다. 한 인간의 육체적 자취와 내면의 풍경이 그 안에 있다. 악보 위, 귀로 전달되지 않는 바흐의 그림은 음악과는 무관하기만 할까? 그 안에는 작곡가의 기분과 상태, 연주자를 향한 흐뭇한 교감이 실렸다.

숨이 있고 침묵이 있던 여백에 핀 꽃들은 곧, 언어화할 수 없는 음표, 정보를 비워내어 순수한 아름다움만 남은 자국,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그러나 울림이 잦아든 허공 어딘가 깃든 것, 공백과 종지에서 찬란하게 펼쳐진 예술가의 마음이기도 했다.

유지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저술가·교육자·그래픽 디자이너. 전 세계 글자들, 그리고 글자의 형상 뒤로 아른거리는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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