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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에 배려까지 담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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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어둠이 가시지 않은 추운 겨울 아침 딸랑딸랑 종소리에 포근한 이불에서 나와 대야를 들고 골목으로 나섰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쓰레기 수거 트럭 위 환경미화원에게 연탄재가 가득 든 무거운 대야를 올려주는 일이 작은 키의 어머니에겐 벅찼다. 30여 년 전 고교생이었던 기자가 쓰레기 대야를 들고 나섰던 이유다.

잊었던 일을 떠올린 건 최근 잇따라 발생한 환경미화원 사고 때문이었다. 광주에서는 지난달 16일 후진하던 수거 차량에, 지난달 29일에는 수거 차량 덮개에 끼여 환경미화원이 사망했다.

서울의 어느 구청을 통해 알아본 환경미화원의 근무 여건은 열악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이들은 대부분 구청이 아니라 민간 대행업체 소속이었다. 업체 관리자는 “하룻밤 30~40㎞씩 걷는 것은 보통이다. 안전을 위해 튼튼한 작업화를 신고 싶어도 딱딱한 콘크리트 위를 걷는 거라 무릎이 당해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에코사이언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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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 트럭이 3분 이상 멈춰 있으면 구청에 민원이 빗발친다. “한밤중 소음이 심하다” “골목 차량 통행이 어렵다” 등. 결국 빨리빨리 거둬 가라는 얘기다.

어두운 골목에서 서둘러 수거하다 보니 다치기 일쑤다. 종량제 봉투 속에는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게 있어 장갑을 뚫고 들어온다. 세척제·살균제 등 위험한 물질이 흘러나온다. 구급약으로도 안 돼 응급실로 달려가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봉투도 있다. 20L 봉투 무게가 20㎏을 넘을 때도 있어 허리를 다치기도 한다.

환경부는 지난달 29일 ‘종량제 시행 지침’을 개정했다. 깨진 유리나 못처럼 날카롭고 취급 위험 폐기물은 용기에 담거나 충분히 감싼 후 종량제 봉투에 넣어 배출하라는 내용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이 내용을 조례에 담으면 위반 시 1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과태료가 아니라도 우리가 환경미화원을 배려한다면 사고는 그만큼 줄일 수 있다. 또 그들을 너무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고마운 작업이다.

1995년 종량제 도입 이후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을 마주 대할 일이 거의 없어졌지만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춥고 어두운 밤 우리 모르게 고생하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