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구원과 갈등의 해소|송월주<불교 조계종 전 총무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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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해방 후 지금까지 정치제도상의 모순을 극복해 나가려고 많은 인적·물적 희생을 치러왔다. 특히 수년동안 계속되어온 충격적인 인권 침해 사태·부정부패사건으로 부의 공정분배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매우 진지하고 간절했으며 줄기찼다. 때문에 6· 29선언 자체가 국민 대다수의 가열된 항쟁의 소산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국민의 여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키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6·29선언 9개 조항이 아직 완전히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과거의 허물을 치고 옳은 길로 들어서려는 결단과 의지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많다. 그 중에서도 이익집단간의 정치적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둘러싼 갈등은 극도로 첨예화되어 있다.
이것은 정권의 획득 내지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온 폐습에서 기인된 것이라 지적할 수 있다. 지역간 감정문제, 계층간·정파간·세대간·도농 간의 갈등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해결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극복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면 좋은 결과를 얻으리라 믿는다.
지역감정만 해도 그렇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계속되어온 지역간의 불균형 개발이나 인재 등용에서 비롯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지역감정은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도를 넘어선 극단적인 대결양상으로 분명히 드러났다. 이의 치유를 위해서는 균형 있는 지역개발과 인재등용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층간의 문제는 관 주도형의 성장위주·숫자위주 경제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항상 업적위주로 나가다보니 노동자들의 권익은 자연히 소홀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문제에 위협을 받고 있는 사회의 기층세력들은 아예 체념해버리거나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꾀하게 마련이다. 노사간의 문제도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좋은 결실을 맺도록 선도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정파간의 문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편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정부·여당은 야당의 주장을 무시하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야당은 정부·여당의 정책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투쟁으로 국민을 현혹시키지 말아야할 것이다.
세대간의 불협화도 큰 문제다. 기성세대는 전후세대의 의견을 받아들임에 있어 급속한 서구화 진행에 따른 가치관의 상층으로 「배부른 소리한다」고 일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정권의 비호아래 자행되고 있는 부조리는 마땅히 척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의 호소를 「고생 안 해본 소리」라고 일소에 붙인다. 이들의 몸부림을 정확히 파악, 뜨거운 사랑과 진지한 대화로 포용해야 할 것이다.
도시·농촌간의 소득격차·생활수준 차 문제도 심각하다. 요즘 모든 농촌은 부채와 자녀들의 교육비에 찌들고 있다. 농산물의 수급과 가격이 안정되어 농촌도 살만한 곳이라는 인식을 하게끔 노력하는 것이 6공화국의 커다란 숙제다.
문제가 비단 이 뿐이겠는가.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는 말속에는 이미 권력지향과 권위주의가 팽배해 보통사람이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 특성상 집권자의 의지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풀어나가는데 매우 중요하다. 어느 쪽의 주장도 무시하거나 추종하지 말고 중도를 지켜 불 합리를 해결하는 슬기를 찾아야겠다. 과거 은폐되어온 부정부패를 척결해 국민 위화감을 해소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민주화와 인권옹호를 위해 투쟁하다가 투옥된 양심수들을 전원 석방·복권시켜 국민화합의 대열에 동참케 하고, 학원·문화·종교·사회단체들이 창의와 자율을 바탕으로 발전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민주주의가 각 분야에서 꽃 필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기를 기대한다.
육화경에 「견화동해 이화동균」이라 했다. 견해를 같이 하는데 화합이 있고, 이익을 골고루 나누는데 화합이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 눈을 가리는 언론의 통제가 사회의 불신풍조를 조장하는 온상이며,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보도지침」속에서는 건전한 여론 조성과 수렴이 불가능하다. 언론이 활성화되면 인식을 공유하게 되고 인식의 공유 속에 극단적인 대결은 자연히 없어진다.
진정한 화합을 연다는 것은. 자기의 주장(인집)만 버려서도 안되며 사회정의를 추구한다(법집)는 명분조차 고집하지 않는 원효 스님의 화정 원리에 바탕을 두고 끊임없이 새롭게 변신하려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대중이 진리다.
일반대중은 사회의 건전한 비판자로서, 능동적인 참여자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정부는 국민의 의사를 정확히 수렴해 정책에 반영함에 추호의 소홀함도 없어야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고 수렴해 정치에 반영, 이를 실천할 때 국민으로부터 환희와 지지를 받는다. 반면 이를 무시하면 국민으로부터 무서운 저항과 비난을 받는다는 사실은 먼 역사는 차치 하고라도 지난 1년간의 국내정치에서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6공화국의 새 정부를 담당하는 노 정권은 중 차대한 역사적 사명을 짊어지고 출발하고 있음을 통감해 역대정권의 정치적 과오로 인한 원과 한을 풀어 공존 공생하는 국민대화합을 창출하는데 선도적인 노력을 경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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