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관을 보고싶다-김성수<대한성공회주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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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일전에 우리 교회의 보이즈 콰이어(성 니콜라 소년합창단) 어린이들과 함께 일본동경공연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단원중 한 어린이가 시내 중심가를 걷다가 디즈닐랜드의 예쁘장한 무대를 연상시키는 파출소 앞을 지나오면서 말하기를 『주교님, 무슨 파출소가 저렇게 장난감 같이 생겼어요. 그리고 저 파출소 안에는 어벙벙하게 생긴 순경 한사람밖에 없어요』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아라비안나이트를 본만큼이나 신기한 눈초리였다.
엉겁결에 나도 다시 파출소를 들여다보면서 어린시절 일제시대에 경험했던 「순사」를 기억해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같은 장소라고 생각되지만 파고다공원 옆 파출소를 지나칠 때마다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던 나의 모습과 오늘날 우리어린이가 경험한 일본 경찰의 모습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어린이가 경험하는 내나라 순경에 대한 느낌과 내 어린 시절에 느낀 일본 순사에 대한 느낌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데 크나큰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어린 소년에게 있어서는 번뜩이는 눈과 빈틈없는 태도, 그리고 거리 곳곳마다 포진한 닭장차를 보며 성장하고 중무장한 전경을 보며 살았기 때문에라도 경찰에 대한 선입견이 「무섭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제의 숨막히는 통치에서 벗어난지 44년이나 되었는데 내 어린 시절과 이제 곧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내 나라의 어린이들이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경찰의 모습조차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데서야-상대적으로 현재의 일본경찰은 그야말로 조금 바보스러울(?)정도로 잘 웃는다-어찌 선진조국의 경찰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국민 누구에게나 경찰·검찰·법원하면 「우리를 도와주는 곳」이라는 인상보다는 「겁나는 곳」또는 「범접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인상이 짙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최근까지 「고문사건」등 흔히 말하는 악재(?)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나 그간 오랜 세월에 걸쳐 고질화된 권위주의적 타성과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보다는 군림해온 인상이 짙은 것도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경찰이 몸부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경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점증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최근에 흉기를 맞고 숨진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아파하지 않은 백성이 어디 있었으랴만 오히려 경찰서의 장례절차가 황량했다는 말을 듣고 오늘에 있어서 우리나라 경찰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다.
최근 강력 사건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흉악한 모습으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는 때에 치안유지의 일선을 담당할 경찰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과거 다른일 때문에 너무나 바빠 미처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치안유지라는 본연의 임무에 그 날렵함과 용감함을 발휘할 때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범인을 잡아 구속시키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했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경찰이 더욱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일은 소위「예방업무」의 강화일 것이다.
사후약방문 또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그런 식이 아니라 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경찰이 혼자 할수 있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래도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찰이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다수 국민들은 범죄 신고조차 꺼린다.
차라리 손해보고 말지, 찾지도 못할 것을 괜히 경찰서에 출입해서 덕될 것이 없다는 국민의 상처입은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비롯해 이 나라 백성들에게도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년 한해에 민주화의 열기를 경험하면서, 곳곳에서 벌어지는 유세를 경험하면서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질서고 규칙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메우던 것을 생각하면 법치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고위 당국자나 정치인까지 그때그때 편리한 대로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는데 뭐 그만한 일에 신경을 쓰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닭과 달걀의 선후를 가림과 같은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총선을 지켜보고 있다.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싸움이 아니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과정이 되기를 기대하며, 그 어떤 불의와 부정도 이제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한결같은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있다. 이것이 국민적 합의이다. 만의 하나 또다시 정부나 경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할 일을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고통의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경찰의 쇄신과 강력 사건을 별개로 보지 말자. 우리들 각자가 정의와 인권에 눈을 돌리지 않고, 질서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폭력의 노예가 되어 칼을 휘두르는 사람 밑에 다시금 신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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