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픈 몸매, 극강의 청량감 내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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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호 06면

르네 플레밍·안나 네트렙코·디아나 담라우에 이어 현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가장 밝게 빛내고 있는 명 소프라노가 온다. 2010년대를 대표하고 있는 드라마틱 소프라노, 리즈 린드스트롬(Lise Lindstrom·52)이다. 9일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콘서트오페라 ‘투란도트’ 타이틀롤에 출연한다. 전막 오페라 대신 콘서트홀에서 멀티미디어 연출을 가미해 성악의 효과적 전달에 집중한 기획이다.

9일 공연하는 최고의 ‘투란도트’ 리즈 린드스트롬

예술의전당은 당대를 대표하는 스타를 프리미어 시리즈에 올린다는 목표 아래,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메트와 빈 슈타츠오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투란도트를 놓고 자웅을 겨루는 크리스티네 고어크(1969년생)도 물망에 올랐지만 기존에 볼 수 없던 투란도트인 린드스트롬을 섭외했다.

1965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린드스트롬은 고어크·니나 스템메(1963년생)와 함께 세계 메이저 오페라가 주력으로 미는 드라마틱 소프라노 작품들에서 주역을 삼분하고 있다. 세 디바는 살로메·엘렉트라·브륀힐데 배역에서 세계 Top 5 수준을 넘어, 넘버 원 캐스트를 수성하고 탈환하는 관계다. 스템메가 바그너 악극에서 상대적으로 두터운 소리를 내는데 반해 린드스트롬은 ‘날렵한 투란도트’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퍼포먼스로 호응이 뜨겁다.

20세기 투란도트로 호평받은 비르기트 닐손, 게나 디미트로바는 중량에서 차오르는 묵직함을 엄청난 볼륨으로 뱉어내는 포효가 일품이었다. 2010년대 들어 체형 변화와 함께 목소리에 힘을 더 싣게 된 네트렙코도 아이다를 시작으로 서서히 드라마티코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린드스트롬은 오십대로 믿기 힘들만큼 외형이 가냘프다. 음악을 관두려 마음먹던 2003년, 우연히 앨라배마 오페라 ‘투란도트’에 데뷔해 지금까지 마흔 개 넘는 버전에서 같은 배역만 150회 이상을 공연했다. 천편일률의 투란도트에 질렸던 오페라 제작자들이 경쟁적으로 구애를 펼친 결과다. 2009년 메트에서 마리아 굴레기나가 부상으로 하차한 투란도트를 공연 시작 불과 20분을 앞두고 맡아 극적으로 뒤바꾼 게 결정적이었다.

린드스트롬의 발성은 앙칼지다. 소리 끝이 크리스털처럼 차갑고 날카롭지만 눈을 감으면 체격을 알 수 없을 만큼 꽉 찬 소리가 공연장 멀리까지 쭉쭉 뻗어나간다. 마치 저체중의 유도 선수가 무제한급에서 거한들을 넘어뜨리는 통쾌함처럼, 눈을 뜨면 체구에선 상상하지 못한 청량감이 홀 안에 가득하다. 무리해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에너지를 뽑아서 각종 신체 기관으로 증폭하는 특유의 방법이 체화됐다. 2013/14 시즌 로열 오페라 오프닝을 투란도트로 맡아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16/17 시즌 폐막작으로 로열 오페라에 올라 테너 박성규(칼라프 역)와 함께한 것도 단골 관객이 쾌감을 바라서다.

키르히스텐 플라그슈타트부터 귀네트 존스까지 역사상 위대한 드라마틱 소프라노들은 본인의 소리를 찾게 된 비결을 외부에 좀처럼 공개하지 않았다. 정규 교육 이외에 겪은 갖가지 고통과 번민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어서다. 린드스트롬도 사생활 노출을 제한하고 실제 나이도 잘 공개하지 않는다. 위 절제술을 받으며 배역을 갈망한 데보라 보이트는 이제 드라마틱을 소화할 힘을 잃었다. 미래의 오페라 무대도 비주얼을 중시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마른 몸을 유지하면서 바그너 소프라노를 지망하는 린드스트롬은 연구 대상이다. 이번 내한이 흔한 흥행 이벤트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글 한정호 음악 평론가 imbreeze@naver.com
사진 예술의전당ⓒ Lisa Marie Mazzu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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