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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 손끝으로 읽는다. '송암점자도서관' 개관

중앙일보

입력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암흑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변화도,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도 볼 수 없다. 보고·듣고·냄새 맡고·맛보고·만지는 다섯 가지 감각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고,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이 시각이다.

시력을 잃는다면 눈으로 읽을 수도 없다. 그러나 손으로 읽을 수는 있다. 점자(點字)가 있기 때문이다. 점자란 점을 볼록 튀어나오게 해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 읽도록 고안된 문자다. 점의 개수, 배열, 특이한 모양이 점자 구성의 변수들이며 집중적 훈련을 받으면 글씨를 읽을 수 있다. 시력을 잃은 장애인이 점자를 익히면 독립성을 회복해 사회생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인천시는 29일 남구의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점자도서관을 개관했다. 예산 21억원을 들여 3층 규모로 건설했고 열람실, 전자도서제작실, 녹음실 등을 갖췄다. 인천에는 등록 시각장애인이 1만3000여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10% 이상을 차지하지만 점자도서관은 없었다.

전 세계 20여개 문자가 점자로 개발되었는데, 한글도 그중 하나다.

한글 점자를 창안한 사람은 송암 박두성(1888~1963)이다.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도 의사소통을 위한 문자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송암은 1926년 한글 점자를 만들었다. 그림은 점자도서관 3층의 송암 박두성 기념관에 걸려있는 작품으로 송암이 성경을 점자로 번역하는 모습이다. 손녀 유명애의 그림이다.

송암이 만든 한글 점자는 '훈맹정음'이라 불린다.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기반으로 가로로 풀어쓰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한글은 ㅎ, ㅏ, ㄴ, ㄱ, ㅡ, ㄹ 로 쓴다.

훈맹정음은 세로 3점, 가로 2점 모두 6점으로 구성되며 64개 점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암은 "점자는 어려운 것이 아니니 배우고 알기는 5분이면 족하고, 읽기는 반나절에 지나지 않으며, 4~5일만 연습하면 능숙하게 쓰고 유창하게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송암 기념관의 밀랍 모형이다. 맹인들에게 침구술을 가르치기 위한 해부학 실습 풍경이다. 송암은 일제시대인 1913년 제생원 맹아부에 발령을 받았는데 맹인들이 졸업 후 침구술, 안마업계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교육했다. 맹인들이 점자 교재를 읽고 있다.

송암점자도서관은 1,608종 3,673권의 점자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일반 독자들이 많이 찾는 소설류를 중심으로 한 달에 5권 정도의 책을 점자책으로 제작하고 있다. 책을 사들이면 점자책으로 만들고, 다시 오디오 책으로 녹음해 시각장애인이 소리로 책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도서관 2층 점자도서제작실이다. 브레일로 400 SR이라는 기계다.

점자도서는 활자가 크고 점 때문에 두껍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라다이스 』1권을 점자도서로 만들면 4권이 된다.

송암점자도서관 열람실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점자도서를 읽고 있다. 오른 손가락으로 먼저 읽고 왼 손가락으로 확인한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그는 무엇이든 볼 수 있고, 어디든 다닐 수 있다. 점자의 힘이다.

사진·글=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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