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종의 광주 사태 필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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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화위가 광주사태 관련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 시청하고 참고인의 증언 청취를 시작하자 이들의 활동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광주사태 당시 계엄당국의 언론검열로 인해 국내보도를 통한 현장 접근이 어려웠던 대부분의 국민들은 비디오 테이프에 적지 않게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민화 위가 구입한 녹화 필름은 모두 7종으로 3종이 해외에서, 3종이 국내에서 제작된 것이며 나머지 1종은 출처 미상이다. 국내 필름은 천주교 광주교구 정평 위 명의로 된 것과 KBS·MBC-TV가 제작한 것 등이며 해외 필름 중에는 조총련이 편집한 것도 들어 있다.
각 필름의 공통점은 시위 장면, 계엄군의 모습, 시위대와 계엄군의 대치 장면 등을 담고 있는 것이며 국내 TV제작 필름을 제외하고는 사망자의 모습, 계엄군이 시체를 끌고 가는 장면, 시위대를 연행·구타하는 장면이 일부 수록돼 있다. 그러나 당시 광주시민들을 자극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잘린 여자의 앞가슴」 「임산부의 죽음」과 같이 당시 나돌던 유언비어들을 뒷받침할만한 장면은 하나도 없었으며 일부 필름에서만 해설자의 설명 속에 그런 표현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또 KBS·MBC필름에도 이른바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하고 계엄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없었다·
민화위 위원들의 표현대로 『필름만 봐 가지고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게 되어 있다. 사실 당시 당국과 시민 양측으로부터 취재협조를 받기 어려웠던 내 외신 기자들이 전모를 필름에 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몇몇 해외 필름은 광주사태의 필름 조각에다 심지어 6·25당시의 시가전 장면을 붙여 그 원인과 책임을 전적으로 당국의 「만행」에 돌리는 편집을 해 「의도」를 의심케 했고 국내 TV필름은 눈에 띄게 시위 장면· 방화· 저항 모습을 강조한 듯한 감을 주었다.
지난 8년간 무조건 덮어놓는데 급급했던 광주사태가 뒤늦게나마 묵은 필름과 증언을 통해 재조명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찍은 각종 필름의 시각이 이처럼 다르듯 광주사대의 치유책은 한가지 방향에서만 모색 될 수 없는 복잡 다기한 측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민화 위의 활동은 자칫 장님 코끼리다리 만지기 식으로 끝나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허남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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