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직원 설문조사까지 거친 끝에 ‘대외안보정보원’ 낙찰…개혁안 뜯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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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국정원장(가운데)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서동구 1차장, 서훈 원장, 김준환 3차장. [연합뉴스]

서훈 국정원장(가운데)이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서동구 1차장, 서훈 원장, 김준환 3차장.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수술대에 오른다. 국정원이 29일 발표한 국정원법 개정안은 이름부터 직무범위, 자금집행 구조 등을 대폭 고치는 내용이 담겼다.

 우선 명칭이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뀐다. ‘해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는 다소 달라졌다. 정해구 국정원 개혁발전위원장은 이날 통화에서 “정보기관 정체성이 담긴 문제다 보니 명칭 변경을 놓고 가장 치열하게 격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내부 직원에 대한 설문조사를 거쳐 추린 10가지 변경안 중 마지막까지 경합한 두가지는 ‘대외정보원’과 ‘안보정보원’이었다고 한다.

 정 위원장은 “가장 큰 고민은 이름 맨 앞을 ‘해외~’로 시작하느냐, ‘대외~’로 하느냐였다”고 말했다. ‘해외~’로 할 경우 국정원의 가장 큰 업무인 북한 관련 기능이 빠지는 느낌을 준다는 게 걸림돌이 됐다. 결국 대통령 공약과는 차이가 있지만 취지를 어느 정도 살리면서 북한 정보기능도 포괄한다는 의미에서 ‘대외 ~’가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한다.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중앙정보부(1961년 창설)→국가안전기획부(1981년 1월)→국가정보원(1999년 1월)에 이어 18년 만의 개칭이 된다.

 개혁안의 핵심은 대공수사권 이관이다. 인권침해 및 직권남용 논란의 근거가 됐던 사안으로, 이 역시 문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개혁안은 직무 범위를 구체화해 그동안 너무 포괄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국내 보안정보’란 용어를 삭제하고 정보수집 활동 범위를 ▶북한정보 ▶방위산업 및 경제안보 침해 ▶사이버공격 예방 등으로 구체화했다. 대공수사권을 어느 기관이 넘겨받을지는 미정 상태다. 국정원 개혁위는 (가칭)국가안보수사청 등 별도의 외부 독립 기구를 두어 대공수사권을 넘기는 방안 등을 놓고 논의 중이다.

 하지만 대공수사권 이관이 현실화하려면 국정원법 개정안의 국회 심의ㆍ의결을 거쳐야 한다. 국정원은 연내 통과를 목표로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찬반이 첨예하게 맞서 극심한 진통이 예상된다. 서훈 국정원장은 이날 정보위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커지고 있다. 북한 업무를 더 잘 하려고 하는 개혁”이라며 “국내(정보)에 치중한 왜곡된 업무구조를 바로잡아 안보위협에 잘 대처하는 것이 개혁의 큰 과제”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논평에서 “북한 핵·미사일 도발로 국가안보가 백척간두 위기인데 대공수사권을 이관하겠다는 건 국가안보 포기선언”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 차장을 지낸 전옥현 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수사권이 없으면 정보수집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개혁위 한 관계자는 “북한이 ICBM급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것도 국회 논의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혁안에는 예산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도 담겼다. 돈 흐름에 대한 국회 등 외부의 ‘현미경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앞으로 국정원 예산안 편성과 집행 결산시 상세내역을 국회 정보위에 보고하도록 했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 상납으로 문제가 된 특수사업비에 대해서는 국정원 내에 ‘집행통제심의위원회’를 두어 심사하도록 했다.

 이밖에 정치관여 우려가 있는 부서를 다시 설치할 수 없도록 법에 명문화했다. 불법감청을 금지하고 정치관여 목적의 정보수집죄에 대한 처벌조항(1000만원 이하 벌금)을 둔 것은 국내 정치관여 논란 불식 차원에서 신설한 조항이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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