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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국장이 둘'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이 뭐길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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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에 대한 연방 감독 기구로 출범한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을 둘러싼 내전이 격화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전임 국장이 임명한 랜드라 잉글리시 부국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국장이 국장 대행 자리를 놓고 법적 소송을 시작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2011년 CFPB 출범의 산파 역할을 했던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을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라고 조롱하는 농담으로 공격하자 “인종차별적 비방”이라고 비난이 일고 있다. 워런 상원의원은 2020년 미 대선 민주당의 대선주자 후보로 꼽히는 인사여서 CFPB 주도권을 놓고 트럼프 대(對) 워런 간 대리전으로 비화한 셈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당시 백악관 특보가 2011년 7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이 추천한 리처드 코드레이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초대 국장을 지명하는 자리에 배석했다.[백악관]

엘리자베스 워런 당시 백악관 특보가 2011년 7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이 추천한 리처드 코드레이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초대 국장을 지명하는 자리에 배석했다.[백악관]

전임 국장 사임 직전 대행 임명 말뚝박기에 트럼프 측근 지명  

발단은 지난 24일 업무 종료 시각에 임기 6년의 8개월이 남은 초대 수장인 리처드 코드레이 전 CFPB 국장이 갑자기 비서실장인 잉글리시를 CFPB 부국장에 임명한 후 사임하면서 시작됐다. 기구의 근거 법령인 금융시장개혁법(도드-프랭크법)은 상원 인준이 필요한 국장이 공석이 될 경우 부국장이 대행을 맡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국장직 말뚝박기를 하려는 시도였다. 트럼프 정부 들어 오바마 정부의 유산인 CFPB에 대해 월가 금융계는 물론 여당인 공화당에서 “반(反)시장 기구”라며 비판의 표적으로 삼자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막 사임한 전임 행정부 임명 국장시절 CFPB는 총체적 재앙이었다”며 자신의 측근이자 CFPB 비판에 앞장서온 멀베이니 예산국장을 국장 대행에 겸직 발령을 냈다. 대통령이 주요 연방직이 빌 경우 임시 책임자를 임명할 수 있도록 한 연방공석개혁법(FVRA)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잉글리시 부국장이 26일 “CFPB 국장직은 부국장이 대행을 맡게 돼 명시돼 있어 임시직 임명 대상이 아니다”라며 워싱턴 연방법원에 임시 국장 임명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결국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CFPB 임시 수장 두 명이 내전을 벌이는 상황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금융위기 이후 수십억 달러 벌금 매겨 월가 눈엣가시

CFPB 탄생은 워런 상원의원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시절 2008년 금융위기의 대책으로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기구의 필요성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금융위기 관련 의회 감독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 특별 고문을 맡아 초대 국장에 코드레이를 지명한 것도 워런이었다. 하지만 공화당과 월스트리트는 CFPB가 은행ㆍ신용카드ㆍ모기지(담보대출) 회사 및 채권 추심업체까지 너무 광범위한 규제권한을 행사한다고 비판해왔다.
초대 국장인 코드레이도 금융시장에 지나치게 공격적 인물이란 반발을 샀다. 지난해 고객 몰래 유령계좌 수백만개를 만들어 수수료를 챙겨온 웰스파고 은행에 1억 8500만 달러(약 2000억원)의 벌금을 매긴 것을 포함해 재임 중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벌금과 소비자 배상을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시티뱅크에도 비슷한 불법 카드 발행 피해자들에 각각 7억 2700만달러, 7억 달러를 지불하도록 명령하는 등 대형 금융기관에겐 최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에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해임하라“고 촉구했지만 법률상 직무태만 등 정해진 사유 외에 면직권한이 없어 자진 사퇴만을 기다리던 상황에서 코드레이의 후임자 지명 사임 전술에 내전이 벌어진 것이다.

워런 "트럼프에 CFPB 깡통 조직 전락시킬 것"  

27일 워런 상원의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국장은 조직을 텅빈 깡통조직으로 만들고 금융 엘리트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조장하게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후임 국장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함께 하는 대형 은행들 편에 설지, 근로자 편에 설지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통신병(Code Talker)으로 활약한 나바호 인디언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던 도중 워런 상원의원에게 화살을 돌렸다. “의회에 여러분 보다 더 오래된 의원이 있는 데 그는 (인디언 공주) 포카혼타스로 불린다”고 하면서다. 워런 의원이 평소 자신이 핏속에 인디언 혈통이 섞여 있다고 말했던 것을 1600년대 초반 영국과 인디언 전쟁 때 포로로 잡혔다가 영국에 귀화한 인디언 추장 딸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이에 워런 상원의원이 MS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이 심지어 영웅들을 기리는 행사조차 인종적 비방을 내뱉지 않고는 제대로 못 마친다는 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오바마-트럼프 측 임시국장 자리 놓고 소송전 #트럼프, 워런 상원의원에 "포카혼타스" 비난 #"월가의 저승사라"로 불리는 워런은 CFPB 산파 #차기 민주 대권주자로 인디언 피섞인 워런 조롱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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