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6자회담 참가국 반응]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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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AP통신은 한국시간으로 29일 새벽 베이징(北京) 6자회담과 관련, 긴급 기사를 타전했다. "북한이 회담장에서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고 핵 실험을 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이틀째 전체회의는 결렬됐으며, 제임스 켈리 미 수석대표는 북한 대표단보다 두시간 먼저 회담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기사는 베이징발이 아니라 워싱턴발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리가 귀띔해준 것이다. 잠시 후 CNN도 똑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6자회담은 실패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상황은 금방 반전됐다. 이날 오후 1시46분에 시작된 국무부 브리핑에서 필립 리커 부대변인은 "켈리 대표가 회담장을 먼저 떠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회담이 끝난 뒤 러시아 대표와 양자회담까지 잘 마쳤다"고 했다.

오후 2시12분부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휴가 중인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이뤄진 클레어 버천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내용은 AP통신 보도와 정반대였다.

버천 대변인은 "회담은 매우 성공적(excellent session)"이라면서 "미국과 참가국들 간의 협력이 훌륭히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성공적인 게 맞느냐"는 질문 공세에 "구체적인 회담 내용까지는 몰라도 현지 협상팀의 평가는 긍정적"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운운에 대해서는 "북한은 선동적인 발언을 자주 해왔다"고 평가절하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이처럼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 자체가 미국 행정부 시스템에선 매우 이례적이다.

이와 관련, AFP통신은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 행정부 내 강온 대립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상원 공화당 정책위는 최근 작성한 보고서에서 "북한과의 대화는 이란 등 다른 테러국가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서 대북 경제제재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 때문에 이날 소동도 6자회담에 대해 불만인 국방부 측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결과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미 국방대학원(NDU)의 제임스 프리스텁 선임연구원은 "가을부터 재선운동에 들어갈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문제가 더 악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러시아 등 북한의 우방을 동원해 북한이 돌출행동을 하지 못하게 붙잡아두면서 시간을 벌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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