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발생 새 원리 규명 가능성…“땅속 연구, 기초부터 다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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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가 21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실험 도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이용재 교수]

이용재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가 21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실험 도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이용재 교수]

이용재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이 최근 지표에서 관찰된 적이 없는 ‘초수화(超水和·Super-hydration) 점토광물’을 발견했다. 초수화란 특정 조건에서 물을 추가로 흡수해 팽창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광물이 지각판이 충돌하는 지하 깊은 곳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이다.

이용재 교수팀, 땅속 '초수화 광물' 최초 발견 #지진·화산활동 원리 새로 설명할 가능성 열어 #지구과학 유력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게재

이번 발견은 지구 내 물의 순환과 그에 따른 지진·화산활동 등의 원리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 논문은 21일(한국시간) 지구과학 분야 유력 학술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2015년부터 땅속 75㎞ 깊이에 해당하는 압력(대기압의 2만5000배)과 온도(200℃)에서 점토광물(지각의 광물이 화학적 풍화 작용을 받아 만들어지는 광물)을 물과 함께 가열했을 때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물이 광물 속으로 유입돼 부피가 30% 이상 증가했다.

이용재 교수는 "이번 연구로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질작용의 원리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자료 연세대]

이용재 교수는 "이번 연구로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지질작용의 원리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자료 연세대]

연구팀은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더 깊은 땅속 환경 조건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지하 200㎞ 깊이 조건에서는 초수화 광물이 맨틀 광물로 바뀌면서 물을 내뿜었다. 이 교수는 “그 깊이의 조건이면 압력과 온도가 꽤 높다. 뜨거운 암석이 물을 만나면 마그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한 지진·화산활동과도 연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실험 시료로 사용한 점토광물은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고령토다.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이 광물은 바닷속 해양 퇴적층의 50~60%를 차지한다. 일본 열도와 같이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아래로 들어가는 섭입대를 따라 물과 함께 지하 깊은 곳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큰 광물이다.

이 교수는 “이번 연구가 함의하는 것은 상당한 양의 물이 지구 내부에도 광물에 포획된 형태로 들어있고, 지표에 존재하는 물과 분리된 게 아니라 순환하는 구조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각판에서 일어나는 지진·화산활동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재 연세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의 연구 논문이 21일(한국시간) 지구과학 분야 유력 학술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홈페이지 캡처]

이용재 연세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의 연구 논문이 21일(한국시간) 지구과학 분야 유력 학술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홈페이지 캡처]

◇“한국에선 불가능한 실험”

20일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국제공동연구팀이라고 하면 좋아 보이지만, 한국에서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지구 내부 깊은 곳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다”고 자평하면서도 “전문 연구시설이 부족해 우리 주도의 연구를 하지 못하고 해외로 찾아다니면서 실험을 진행한 점은 아쉬웠다”고 털어놨다.

연구팀은 땅속 깊은 곳의 압력을 만들려고 작은 다이아몬드를 장착한 소형 고압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에 맞는 온도 조건과 함께 변화 정도를 측정하려면 방사광가속기라는 전문적인 시설이 필요했다. 국내에도 포항가속기연구소에 2기의 가속기가 있지만, 이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환경은 지하 100~200㎞까지였다.

연구팀은 지구 중심에 더 가까운 곳의 변화를 보기 위해 더 전문적인 고압·고온실험이 가능한 미국·독일·중국 등의 방사광가속기 연구소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선진국보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고 연구진 수도 부족해 정부 지원 등에서 우선순위가 밀린 탓이다.

이 교수는 “최근 발생한 경주·포항 지진이 왜 일어나는지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땅속의 어떤 물질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초과학 연구에 많은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주제로 연구하면서 특정 분야를 주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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