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어느덧 40년 '불혹의 왕위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사회풍조가 어지럽고 불건전한 오락이 유행하는 이때 레크리에이션이자 도(道)이며 지능경기이고 정신스포츠인 바둑을 전 국민에게 장려하고 싶다." 1966년 1월 14일자 중앙일보에 소개된 왕위전 창립 기념사의 일부다. 40기 KT배 왕위전이 24일 한국기원에서 개막된다.

66년 중앙일보 창간과 더불어 시작된 왕위전이 어언 불혹의 나이를 맞이한 것이다. 그 긴 세월 동안 왕위전의 정상을 밟았던 프로기사는 김인 9단, 하찬석 9단, 조훈현 9단, 서봉수 9단, 유창혁 9단, 이창호 9단 등 6명뿐이다. 이 중 60년대의 최강자 김인 9단은 66~73년까지 7연패를 이뤘고 조훈현 9단은 82~90년까지 9연패를 이뤘다. 이창호 9단은 지난해 옥득진 2단이란 신예기사를 꺾으며 사상 최초로 10연패를 달성했다. 그러나 왕위전 최다 우승자는 아직 조훈현(13회)이고 이창호는 11회로 2위다.

이처럼 왕위전의 역사는 김인-조훈현-이창호로 이어지는 한국 일인자의 계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불굴의 승부사인 서봉수 9단도 불과 2회 우승했을 뿐이고 영남 바둑계의 대부 격인 하찬석 9단이 자신의 전성기이던 74년에 딱 한 번 우승했다. 특이한 인물은 유창혁 9단이다. 그는 92년부터 96년까지 왕위전 4연패를 달성했다. 이창호 9단의 파워가 최고조일 때 이룬 것이어서 이 4연패는 바둑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유창혁은 왕위전 승리를 통해 이창호의 전관왕 쟁취를 가로막았는데 전관왕은 기록 제조기로 불리는 이창호가 유일하게 못해본 것이다. 당시 이창호는 13관왕으로 왕위만 따내면 전관왕이 될 수 있었다.

1기 왕위전엔 40명의 프로기사가 참가했고 예산은 총 100만원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회 예산이었다. 올해 예산은 3억원. 참가 기사는 206명이다. 예산은 300배, 프로기사는 5배 증가했다. 왕위전은 89년 사상 최초로 해외(미국 LA)에서 도전기를 벌이기도 했다. 조훈현과 서봉수 두 라이벌이 대결했는데 승자는 조훈현. 서봉수는 왕위전 최다 준우승(8회)을 기록하고 있다.

이창호 9단이 조훈현 9단을 4대3 박빙의 스코어로 꺾고 첫 우승컵을 따낸 것은 91년이다.

이세돌 9단은 2001년과 2004년에 두 번 이창호에게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왕위전은 이창호 이후의 인물에게 아직 정상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아직 이창호 이후의 일인자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일까. 그러나 바둑계의 정상권은 근래 치열하게 요동하고 있다. 아직 도전권도 따본 적이 없지만 실력은 충분한 최철한.박영훈 등 신흥 강자들이 올해 왕위전에 명함을 내밀 수 있을지 주목된다.

40기 대회는 도전기 직전까지 계속 토너먼트다. 지난해 팬들의 지지를 받았던 아마추어 참가는 아쉽게도 올해는 없다. 왕위전은 지난해 아마추어에게도 기회를 주고 대회를 재미있게 한다는 취지로 전국아마추어 대회를 열어 4명의 상위 입상자를 왕위전에 참가시켰다. 그러나 프로기사들이 왕위전 보이콧을 결의하는 등 의외의 사태로 인해 왕위전이 한 달 정도 연기되는 사건이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