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평민당의 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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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선거에 실패한 야권3당중 가장 깊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평민당은 11일 그동안 미뤄오던 당직개편을 부분적으로 단행해 당의 골격을 다시 정비했다. 그러나 부총재단의 임명 보류등으로 미뤄볼 때 체제정비라기 보다는 일종의 재봉합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선거후유증을 수습한 것도 아니고 당내에서 끓고 있는 내연요인이 진정되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내일해온 재야인사 영임문제도 매듭짓지 못한 채 일단 후일을 기약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거의 절대적이었던 김대중총재의 권위, 지도노선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정대철전대변인의 「사퇴성명」으로 촉발된 당내비판은 최근 들어 노골화·집단화하면서 『단일화 실패는 야당사상 반민특위 해체에 버금가는 잘못』(장기욱의원)이라는 「폭탄선언」까지 나왔다.
특히 현역의원들은 야권통합을 극구 주창하면서 심상찮은 기류를 조성하고있다. 이번 총선에 사활이 걸린 의원들은 이 상태로는 안된다는 것이며 통합이 어렵다면 「연합공천」의 형태로나마 어쨌든 「단일당」의 모양을 갖춰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충청·경기·서울지역 출신중에는 당을 뛰쳐나갈 기미 마저 없지 않다.
김총재의 「후광」을 인정하는 호남출신의원들도 이같은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는 형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임시전당대회를 통해 외견상 전열을 가다듬은 민주당에 기선을 빼앗긴 초조감도 크다. 김대중총재가 전두환대통령과의 면담에 집착하는 것도 이런 속사정 때문인 듯 하다.
김총재로서는 소속의원·당원들에게 평민당이 총선에서 잘해낼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평민당의 총선목표는 민주당이 주장하는 「제1당」이 아닌, 「제1야당」이다.
지난 선거의 2백45개 개표구중 민정당의 1위득표가 1백23개, 평민당이 70개, 민주당이 35개, 공화당이 17개였던 「객관적 사실」을 이같은 목표 설정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통령선거 결과를 최소한 그대로 몰고가자고 해도 △야당후보단일화실패책임 △3위패배의 부담 △선거후의 처신등 장애요인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단일화 실패 책임은 민주당과 함께 지는 부담이긴 하나 그것도 상대적으로 훨씬 불리한 처지인데다 치욕적인 3위패배는 전적으로 혼자 져야하는 부담인데 여기에 타당보다 몇갑절 심각한 「지역당」 적 성격, 「계급정당」의 잘못된 인상까지 겹쳐있다고 보고있다.
극도로 불리한 출발점의 또 다른 측면은 이번 총선의 초반이슈가 정부·여당 대 야당의 대결구도보다 양김책임추궁으로 쏠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평민당은 이번 총선을 대통령선거에서 포착하지 못한 정부·여당의 광범위한 선거부정의 결정적 사례들을 치밀하게 가시화시키고 노태우선언의 허구성, 쇠고기수입등 한미통상문제, 광주사태의 근원적 해결등을 내세워 노정권과의 한판 대결로 몰고갈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위론에 입각한 원론적 전략이고 문제는 수많은 핸디캡의 돌파가 관건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자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평민당은 민주당과 이렇게 다르다』는 「차별성」 을 증명(?)하는 문제일수 밖에 없는데 갖가지 진통을 감수하면서도 재야영입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척상황은 좀더 두고볼 문제이나 평민당의 「재야포석」은 문자 그대로 사활이 걸린 문제로 되어있다.
신진재야인사의 대거영입이 성공할 경우 △「새정당」으로의 일신효과외에 △선명성, 노선차이등으로 민주당과의 차이가 강조돼 단일화 실패의 「편중된」 책임이 감소되고 △대통령선거 패배 원인을 재야의 입을 통해 부정선거쪽에 부하시킬수 있으며 △무엇보다 「호남당」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호남당」을 극복하는 문제는 영남등 취약지역의 조직보강이라는 당면문제와도 연결돼 설령 총선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치 못한다 하더라도 지자제실시에 대비하는 포석도 겸해 있다. 문호개방의 명분아래 집단지도체제를 내걸고 「당절반의 실권을 차지해도 좋다」는 적극적 자세를 표명하고·나선 연유가 다 그런 맥락에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야는 평민당측 의도대로 잘 묶여지지 않고 있다. 민통련 일부가 평민당 참여를 결정했으나 민통련 내부에서조차 이탈자가 생기는 등 갈가리 찢어지고 있어 재야의 구심역할을 거의 못하고 있다.
재야세력 내부에도 두김씨의 책임, 특히 김대중총재가 더 책임이 있다는 차등책임론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어 평민당이나 김총재의 정치적 흡인요인은 반감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재야 일부가 평민당에 입당한다고 해서 평민당이 과연 체질이 개선된 모습으로 국민에게 보일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와 얼마나 당선자를 더 낼수 있겠느냐의 문제다.
재야는 이미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 정치적 역할이 축소됐다. 그 세력이 평민당 이미지를 개선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급진화시킬수 있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재야의 영입은 그나마 야권통합등으로 흔들리고 있는 현역의원등 당내보수적세력을 더 동요시킬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김대중총재나 평민당은 △재야를 영입함으로써 당의 진로를 보다「혁신화」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세력이나마 유지하는 정도로 온건개혁 세력을 표방하고 나갈지의 노선상 문제와 △민주당의 공세, 신당 움직임속에 당을 유지해나가는 문제 △현역의원들의 불만을 진정시키는 문제 등 눈앞의 현실문제들에 둘러싸여 있는 꼴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것도 일도양단식으로 명쾌하게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들이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모든 문제를 「미봉」하면서 당을 총선까지 끌고가고 총선을 통해 전기를 모색하자면 선거협상에서 묘기를 찾을 수밖에 없다. 4월총선, 소선거구제를 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당제가 가능한 중선거구제를 고려할 의사를 보이는 것도 그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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