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새해 경제전망 "낙관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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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역사상 1929년이 월스트리트 증시파국의 해로 기록되었듯이 1987년은 전세계적 증시파동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29년 10월후 30년대 대공황이 도래했다. 도처에 대량 실업과 생산감소, 농산품과 광산제품의 가격 폭락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제3세계는 빈곤으로 떨어졌다. 궁극적으로 「아돌프· 히틀러」를 독일의 권좌에 올려놓음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의 가공할 결과의 원인이 되었다.
역사가 항상 반복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성공적 발전을 해오고 있는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일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공황은 수출 지향적인 태평양 연안국가들의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일본·대만·싱가포르·홍콩·한국제품의 수출시장이 줄어들음으로써 이들은 곳곳에서 이윤과 실질임금을 급격히 줄여가면서 무자비한 제살 깎기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집 가능한 자료들을 분석하고 경제사의 교훈 및 이론경제학의 모든 실증적 지식을 참조할 때 한국 같은 나라의 새해 경제전망은 상당히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증거는 세계적 공황이 올 것을 예고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 주요예상은 이런 것들이다.
1, 29∼33년에 경험한 규모의 세계적 대공황은 없을 것이다.
2, 내년 미국의 경제성장은 3∼4%의 의욕적인 성장률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10월의 증시파동 때 입은 1조달러 가량의 손실로 인해 성장률은 1∼2·5%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전반적인 생산 및 고용저하를 내용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불황은 아니고 성장둔화 정도가 될 것이다.
3, 유럽은 서독의 주도 아래, 불황기미를 미리 방지할 능력을 갖고있다. 나는 구공시(EEC) 회원국들이 각기 중앙은행과 정부에 대해 그같은 힘을 활용하도록 요구할 것을 희망한다.
4, 미국과 유럽에선 여전히 보호주의 쪽으로 기우는 국민감정이 큰 위협으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달러화 평가절하는 미 무역수지개선을 가져오고 있으므로 어느 정도는 수입 쿼터와관세 인상을 주장하는 로비이스트들의 입장을 약화시켰다.
그러나 환율조정에 따른 수출가격과 수입가격사이의 무역조건의 악화로 무역적자가 계속 기록적 수준을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지금까지 성취한 미국의 외형적 수출증가와 수입감소의 성과는 모두 씻겨져 내려가 버렸다.
미국은 85∼87년 기간에 일본에 대해 엔화를 절상하도록 압력을 넣어 성공했던 것처럼 한국과 대만에 대해 그에 못지 않을 강력한 통화절상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화 절상은 이윤 폭을 잠식하고 수출시장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결코 즐거울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라도 한국은 이 같은 조정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87년 10월 주가폭락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물론 시작됐지만 이는 세계도처의 공통현상 이었다. 미 주식폭락이 심각했던 것 이상으로 호주·서독·영국·싱가포르·홍콩의 폭락은 더 심했다.
더구나 82년부터 87년까지 계속된 주식투기의 광기는 지난번 증시파동의 근본 원인으로서 미국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심했던 것이다.
멕시코는 한국의 독자들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적절한 예이다. 한국의 시장이 각종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유화의 과정을 완료하고 나면 경제규모와 풍요의 수준은 특히 다른 지역. 보다도 멕시코와 흡사해질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멕시코는 석유발견을 바탕으로 경제를 과잉 확대시켰지만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값 인하는 멕시코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초 멕시코 주식시장은 2∼4배로 불어나 결국 10월 대폭락을 맞았다.
미국과 한국의 장래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일본의 주식시장이 현재 아마도 가장 투기성이 짙은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역설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주가하락이 가장 작은 곳이 동경 주식시장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에 대한 확실한 설명은 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일본 중앙은행과 정부가 주가조작의 정당성을 성공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래도 불안과 의문은 남는다.
말하자면 내년도 동경증시의 대규모 주가수정은 회피할 수 있을 것이며 결국 주가유지를 위한 정부쪽 설득은 먹히지 않게 될 것인가 등이다.
일본 대기업 주가가 50% 떨어지면 전세계는 새로운 충격파가 휩쓸 것이고 월스트리트와 런던증시도 함께 휘청거릴 것이다.
동경에서 자산가치가 떨어지면 일본 투자가들은 국내보완책으로 해외투자를 회수함으로써 엔화 절상요인을 초래하고 결국은 원화에 대해서도 추가적 절상의 압력을 가할 것이다.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의 운명은 통제 불가능한 외부요인들에 의존돼 있다. 미국이 87년 10월 이후의 충격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은 한국운명에 직결된다.
유럽의 장래정책도 한국에 훨씬 더 우려되는 대목이다. 어찌됐든 미국은 그래도 세계시장에서 좀더 경쟁적인 제품을 생산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미국의 성공을 가져오게 한 수단들은 구주공동시장에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서독 마르크화와 영국 파운드화도 점점 가치가 높아져 88년에는 유럽기업이 미국에 밀릴 것이다.
우리는 서독의 주도아래 유럽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미 수출확대만큼 내수시장을 확대하도록 모든 부양조치들을 취해주기를 희망한다.
결국 현실주의자라면 미국이 무한정 해외에 내다 파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외국에서 사들일 수만은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이 81∼82년 불황에서 헤어나도록 세계에 제공했던 부양조치는 일시적 지원일 뿐이다.
나는 한국이 성공적 발전실적을 바탕으로 88년과 89년에도 경제발전을 계속할 것으로 낙관한다. 문제는 정치와 사회 쪽의 불확실성이다.
경제적 효율성과 성장은 사회안정에 크게 의존한다. 필리핀의 최근 역사가 증언해주듯 화합의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경제전문가로서 본인은 정치분석과 전망은 삼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감축에서 이룩한 전진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맞으면서 세계 전반적 경제발전에 새로운 희망을 밝혀주었다는 사실이다.
◇「새뮤얼슨」 교수 약력(Paul A. Samuelson)
▲1915년생
▲시키고대·하버드대 수학(경박)
▲1937년 하버드대 교수
▲1940년 MIT대 교수(현재)
▲19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저서 『경제학』 『경제분석의 기초』 『선형계획과 경제분석』 『경제학 독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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