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가 아쉽게 내놓은 알짜사업, SK 딥체인저로

중앙일보

입력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대부분 원유의 찌꺼기에 해당하는 납사에서 에틸렌과 파라자일렌 등의 원료를 뽑아내는 데 주력해왔다. 널리 쓰이는 범용 화학제품 중심이었다. 그러나 범용제품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원료 가격이나 경기 변동에 따른 수익성이 불안정했다. 특히 중국업체들이 설비증설로 따라붙으면서 경쟁이 심화한 상태였다.

범용위주에서 고부가제품 손에 넣은 SK #포장재 접착제 시장의 글로벌 메이저로 #고압력 등 고난도 공정이 진입장벽 높여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이 이런 범용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 9월 인수합병(M&A)을 마무리한 미국 다우의 ‘에틸렌 아크릴산(EAA)’ 관련 사업은 ‘고부가 포트폴리오 확장’ 전략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최태원 SK 회장이 주문해온 ‘딥 체인지(Deep change)’의 일환이다. 인수 이후 사명을 SK프리마코로 바꾸었다.

EAA는 고부가 화학제품인 기능성 접착수지로, 우유팩이나 세제의 알루미늄 호일이나 얇은 포장재용 접착제로 주로 쓰인다. 기술 장벽이 높아서 다우와 듀폰 등 소수의 글로벌 메이저업체들이 독점하고 있는 시장이다. 제조 공정에서 엄청난 압력시설이 필요하고 높은 산도에서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하우를 요구한다.

포장재 접착제로 쓰이는 EAA(에틸렌 아크릴산) 제품. 손바닥 위 가루를 고열에서 녹이면 포장재를 우유팩 등에 붙이는 접착제가 된다. [SK프리마코 제공]

포장재 접착제로 쓰이는 EAA(에틸렌 아크릴산) 제품. 손바닥 위 가루를 고열에서 녹이면 포장재를 우유팩 등에 붙이는 접착제가 된다. [SK프리마코 제공]

SK가 인수한 다우의 사업장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남부 프리포트와 스페인 동부해안의 타라고나 지역에 위치한다. 두 곳에서 연간 5만5000t의 EAA제품을 생산해 1500억원의 매출을 올려왔다. 워낙 고부가 제품이어서 영업이익률이 꾸준하게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알짜 사업’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운도 따랐다. EAA사업은 중국 시장에서 2020년까지 매년 7%의 고성장이 예상됐지만, 다우와 듀폰이 합병을 추진, 시장점유율이 70%을 넘어서면서 반독점 이슈를 해소해야 했다. 다우가 눈물을 머금고 EAA 사업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업체 10여 개사가 입찰에 뛰어들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SK종합화학이 의사결정 구조에서 강점을 보여 인수 파트너로 최종 낙점됐다.

김종현 SK프리마코 대표는 “다른 입찰참여 업체에 비해 많은 액수를 써낸 것은 아니었다”면서 “다우 공장 내에 시설이 위치한 만큼 서로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운영 역량을 갖췄는지가 분수령이 됐다”고 설명했다.

SK인수한 다우의 고부가 제품 EAA 사업부 공장. 지난 9월 인수를 마무리했다. [SK프리마코 제공]

SK인수한 다우의 고부가 제품 EAA 사업부 공장. 지난 9월 인수를 마무리했다. [SK프리마코 제공]

실제 최근 방문한 프리포트의 다우공장은 1000만평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을 자랑했다. 이 가운데 EAA 생산설비는 2000평 정도로 일부만 차지했다. EAA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시설은 고압기. 울산 SK공장의 최대기압이 170기압이지만 이곳에서는 2200기압을 사용할 정도로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강산을 다량으로 첨가해야 해 웬만한 화학업체는 다루기 힘든 편이다. 고난도의 제조공정이 진입장벽을 높게 쌓은 것이다.

SK는 여세를 몰아 지난달 다우로부터 식품 관련 포장재인 PVDC 사업의 인수계약도 마무리했다. 미국 미시간 공장 시설을 이용해 10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3700억 달러 수준인 전 세계 고부가 포장재 시장에서 글로벌 선두업체가 되기 위한 또 하나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SK프리마코 김종현 대표가 다우에서 인수한 EAA(에틸렌 아크릴산) 제조공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프리마코 제공]

SK프리마코 김종현 대표가 다우에서 인수한 EAA(에틸렌 아크릴산) 제조공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SK프리마코 제공]

김 대표는 “생산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해 향후 중국이나 울산 등지에 EAA 등 고부가 포장재 원료를 생산하는 제2공장 건립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포트(휴스턴)=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