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4분의 1이 아사 위기…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낀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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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 속에서 고통받는 예멘 사람들. 한 어린이가 치료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 속에서 고통받는 예멘 사람들. 한 어린이가 치료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동의 예멘 국민 700만 명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다. 2016년 기준 전 인구의 4분의1, 국민 네 명중 한 명이 아사 위기에 직면했다는 얘기다.

예멘 내전에, 중동의 맹주 노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개입해 #민간 피해 극심, 대부분 어린이

유엔(UN)은 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아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크 로콕 유엔 인도지원조정국 국장은 “구호물자 수송을 제때 하지 못하면 전 세계는 엄청난 규모의 기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심각한 식량부족에 더해 최근에는 콜레라까지 덮쳤다. 지난 7일 욜란다 재퀴멧 국제적십자위원회 대변인은 “콜레라 예방약을 실은 배가 사우디의 통제로 예멘에 들어오지 못했다”며 “이러한 조치가 계속될 경우 결과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위기다.
사우디는 왜 예멘으로 가는 모든 길을 막은 것일까.

대체 예멘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예멘. [사진=구글 지도 캡처]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예멘. [사진=구글 지도 캡처]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예멘은 현재 3년째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다.
발단은 2014년 9월, 수니파 정부에 대항하는 시아파 무장단체 ‘후티’가 수도(사나)에 진입하면서다. 후티 반군은 2015년 1월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이곳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

그러자 사우디가 위기를 느꼈다. 아라비아반도에 시아파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사우디는, 후티 반군이 이란의 군사적ㆍ재정적 지원을 받는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사우디를 중심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수니파 국가들이 뭉친 연합군이 꾸려졌다. 2015년 3월, 이들이 예멘에 공습을 가하며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단순한 내전을 넘어, 중동의 강대국인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의 대리전이 된 것이다.

내전으로 주요 건물과 도로, 유적 등이 파괴된 예멘. [AP=연합뉴스]

내전으로 주요 건물과 도로, 유적 등이 파괴된 예멘. [AP=연합뉴스]

그러나 금방 제압될 줄 알았던 후티 반군은 만만치 않았다. 전쟁은 더욱 격화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는 시리아 내전과 IS 격퇴에 집중하느라 예멘을 사실상 방치했다. UN이 중재한 평화 회담도 소용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전 기간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도 예멘에서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그렇지 않아도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던 예멘은 황폐해져 갔다.

사우디와 이란의 싸움 … 민간인 사망자 중 3분의 1은 어린이

국제사회에서 ‘잊힌 전쟁’이 되어가던 중, 최근 사우디가 격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5일(현지시간) 예멘의 친후티 방송국이 공개한 미사일 발사 장면. 전날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할리드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사우디군은 이를 요격했다.

5일(현지시간) 예멘의 친후티 방송국이 공개한 미사일 발사 장면. 전날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할리드 공항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사우디군은 이를 요격했다.

지난 4일 후티 반군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 칼리드 공항 근처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사우디는 미사일로 이를 격추했지만 격분했다.
이틀 후, 보복이 시작됐다. 예멘으로 향하는 육로는 물론 하늘길과 바닷길이 모두 봉쇄됐다. 구호물자 수송이 전면 중단됐다. 예멘이 음식과 연료 등 대부분의 생필품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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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은 사우디를 지지하고 나섰다.
백악관은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로 미사일을 발사한 배후에 이란이 있음을 지목하며 “이란을 규탄하며, 노골적인 국제법 위반에 맞서 사우디를 비롯한 모든 동맹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8일 밝혔다. 이란이 후티 반군에 무기를 보내지 못 하게 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했다고도 덧붙였다.

고통받는 것은 예멘의 보통 사람들이다.

콜레라로 힘들어 하는 예멘 어린이 [유니세프=연합뉴스]

콜레라로 힘들어 하는 예멘 어린이 [유니세프=연합뉴스]

연료를 기다리는 예멘의 여성. [EPA=연합뉴스]

연료를 기다리는 예멘의 여성. [EPA=연합뉴스]

BBC는 유엔의 발표를 인용해 “2015년 3월 이후 공습과 전투로 8670명 이상이 숨지고 5만 명 가까이 다쳤다”며 “민간인 사망자 중 3분의 1은 어린이”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예멘 내전은 중동 지역의 긴장을 높이고, 이 지역 내 불안은 서방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국제사회가 이 전쟁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미 서구 정보기관들은 IS 등에서 갈라져나온 테러조직이 예멘을 활동기지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예멘의 아픈 역사

예멘 내전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났을 리 없다.
불운한 역사의 시작은 19세기 중반이었다. 1839년, 오스만 제국 하에 있던 이들 앞에 영국군이 나타난다. 항구 도시 아덴을 노린 이들이 남예멘 지역을 점령하며, 예멘의 북쪽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남쪽 지역은 영국이 다스리게 된다.

그러다 1918년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자 북예멘이 먼저 독립해, 오랜 혼란을 거쳐 자본주의 국가를 수립한다. 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독립한 남예멘에선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게 된다.

분단된 나라는 끊임없는 다툼 끝에 1990년 통일되지만, 4년 후 내전이 발발한다. 북예멘의 주도로 곧 통일되지만 이후로도 남북 갈등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던 예멘에도 2011년, 중동 민주화 혁명의 바람이 닿았다.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는 물러났다. 사람들은 민주 국가를 꿈꿨지만, 지독한 가난과 제대로 된 리더의 부재로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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