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사학개혁 없이 사학자율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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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개정 사학법은 시대착오적인 법이므로 마땅히 재개정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 법이 민주주의에 반(反)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민간의 자율이 창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언론.시민단체.종교.사학에 대해 정부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있어도 자율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정부가 사학의 자율을 훼손하면 다른 영역도 훼손될 위험이 커지고 나중에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 많은 사람이 지상파 방송이 장악되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비슷한 처지가 되었는데 사학까지 자율성을 잃으면 다음에는 무슨 사태가 올 것인가 하며 걱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정 사학법을 반대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법이 선진화에 반하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가 선진화 경쟁에 나서면서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최대한 신장시키고 있다. 그래야 인간의 역량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중국조차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높이기 위해 사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인천 경제특구에서도 외국 사학은 개정 사학법과 같은 규제가 전혀 없다. 온갖 규제를 다 받는 한국 사학이 외국 사학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사학과 관계가 없는 민간단체들까지 사학의 자율을 위해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민간단체들이 지키려는 사학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학이지, 비리와 전횡의 사학이 아니다. 이번 개정 사학법은 전교조가 추진한 법이다. 그런데 이제는 전교조가 좌파 단체임을 국민이 다 알게 되어 전교조에 대한 지지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국민의 약 반수가 여전히 개정 사학법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전교조보다 기존 사학의 비리와 전횡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종교교육의 자유를 위해 사학법을 반대하는 기독교나, 민주주의와 선진화를 위해 사학법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에 의존하려고만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교직원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길은 없다. 이사회와 교직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학의 자율을 유지하되 비리와 전횡을 척결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서 사학의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해야 한다.

사학의 비리와 전횡이 사라지면 그때부터 대부분의 사람이 사학이 전교조의 영향권 내로 들어가선 안 되고, 정치권력이 사학을 규제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사학 선진화를 위해 사학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여당은 재개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대부분의 사학은 큰 문제가 없다는 사학 측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학 구성원의 체감 정도는 다르다. 게다가 세상은 늘 일부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보는 법이다. 따라서 사학 대부분이 건전하다는 말이나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사학 비리를 근절할 수 있다는 주장만으론 충분치 않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사학들은 감동적으로 자기혁신을 시작하라. 사학의 구성원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라. 그래야 사학법 재개정의 길이 활짝 열린다. 사학의 비리와 전횡이 법 개정의 구실을 주었음을 정직하게 반성하지 않고 정부 탓, 전교조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나라를 선진화하려면 뼈를 깎는 자율 개혁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서경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