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창고에 名作이 뒹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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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을 지향한다는 정부가 실제로는 소장 미술품 관리조차 허술하게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청와대에선 대가들의 명품뿐 아니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전직 대통령의 집기류도 지하창고에 마구 방치하고 있다.

감사원은 28일 "청와대엔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 등 추정가격이 67억원에 이르는 미술품 6백8점이 소장돼 있는데도 관리가 부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예컨대 장두건의 서양화 등 미술품 20점은 항온.항습시설이 없는 일반창고에 보관돼 훼손이 심하고 그 진위 및 가격을 감정한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무명작가가 쓴 '신한국창조'라는 휘호 등 미술품 6점은 작가를 잘못 파악하고 있고, 월전 장우성의 한국화 8폭 병풍을 공예품으로 분류하는 등 관리도 엉망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전직 대통령들이 사용하던 원형 응접탁자, 장식용 뒤주 등 사료적 가치가 있는 집기류 1백점은 지하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다. 또 대통령 행사용으로 1999년 사들인 금제 티스푼 등 역대 대통령들이 구매.사용한 기념품 중 상당수가 견본품 등 자료가 없어 구매현황조차 알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재외공관 등에 1천5백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외교통상부도 미술품을 소홀하게 관리해 감사원의 주의를 받았다.

본부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는 지하창고에 방치돼 누런줄이 생기는 등 심하게 훼손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주프랑스대사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불화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인데도 대사관저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외교통상부는 이 불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관리하라는 감사원의 권고에 따라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감사원은 정부의 미술품 관리가 허술한 것은 조달청고시로 돼 있는 '정부미술품 보관관리 규정'이 '물품관리법 시행령'의 하부규정으로 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가치를 산정하기도 힘든 예술품을 '물품'으로 취급하고 있으니 관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는 것이다.

한 미술전문가는 "80년대 중반에 정부 소장 미술품을 조사한 데이터가 있는데 현재와 비교하면 문제가 생길까봐 공개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은행식으로 각 부처의 모든 미술품을 모아 관리하며 필요할 때마다 해당 부처에 대여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또 영국은 브리티시카운슬, 독일은 이파(IFA)라는 기관에서 작품을 일괄 구입해 수장고에 보관하고 필요한 부처에 미술품을 대여한다. 미국 백악관도 역대 대통령이 사용한 식기.집기 등을 철저히 보관하는 것은 물론 관광용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정철근.권근영 기자

<사진설명전문>
지난해 가을까지 청와대에 소장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진 서울대 정창섭 명예교수의 '새마을 운동'. 그림 중간 부분이 군데군데 찢어져 테이프를 붙였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돼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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