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따른 국민감정 무마가 문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양담배·쇠고기·보험을 둘러싼 미국의 301조 발동 움직임등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한미통상마찰은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그간 대통령선거등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미측이 우리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요구를 「선거후 년내」라는 시점까지 유보해 온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 정부는 이미 지난 7월 미측에 대해 관광호텔용 쇠고기에 대해서는 『선거가 끝나고 국내 소값이 안정되면 수입규제조치를 년내에라도 풀겠다』는 약속까지 했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일단 뒤로 미뤄놓은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4월 우리정부가 25억달러의 특별외화대출제도를 도입하는등 일련의 적극적인 대미수입확대조치를 취했을 때만해도 미행정부나 의회·언론등은 우리정부의 대미흑자축소 노력을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미통상실무자들은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강한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고 그간 미측과 접촉을 가져온 우리측 실무자는 전한다.
양국간 무역불균형이 뭔가 눈에 띄게 고쳐질줄 알았더니 지난해 73억달러 규모였던 대미흑자가 줄기는 커녕 갈수록 늘어나 올해에는 1백억달러에 육박할전망이고 실효성있는 수입개방을 전제로 미측이 그간 대만이나 일본과 같은 다른 무역분쟁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인해왔던 원화의 절상도 이제와서 보니 너무 큰 차이가 나 있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2일 현재일본엔화는 미달러에 대해 26·1%, 대만달러화는 24·3%씩 각각 절상되었으나 원화는 8· 4% 절상되는데 그쳤다 (87년12월 대비) .
미국시장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 상품은 그간 대만이나 일본상품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더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결과는 무역분쟁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기본입장이 국민경제에 대해 축소지향적이고 모든 산업에 대해 무차별적인 환율절상은 가급적 피하고 대신 선별적인 수입개방으로 대처해나간다는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측이 원화의 절상폭을 크게 문제삼지않을만큼 가시적인 개방조치를 보여줘야하는데 당장 걸려있는 쇠고기·양담배·보험등의 현안만 해도 우리정부가 손쉽게 개방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납득을 끌어내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다가오는 국회의원선거도 선거려니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고 곧 이어 개방조치를 취한다는것이 모양이 좋지않기 때문이다.
양담배와 보험은 그래도 문제해결이 쉬운 편이다.
개방에는 원칙적인 합의가 이루어져있는 상태고 다만 양담배의 판매가격, 30대 대기업그룹의 보험합작참여 제한등 실무적인 협상을 통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를 끌어낼수있는 문제들이 걸려있기때문이다.
그러나 관광호텔용 고급쇠고기는 그같은 실리적인 협상차원이라기보다 양국 정치지도자들의 체면이 걸려있는 「명분」싸움이어서 가장 타협이 힘들게 되어있다.
경제작 효과만을 고려해본다면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하더라도 년간 쇠고기 수입액은 1천만 달러가 채 안된다.
미국이 챙길 이익도, 우리가 손해볼 것도 별로 없으며 더구나 국내생산이 안되는 고급쇠고기를 호텔에서 들여다 쓴다해도 국내 소값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
그런데도 소값파동의 기억이 생생한 우리로서는 명분싸움에서 쉽게 양보할수가 없고 미국도 마찬가지 입장인 것이다.
이를테면 재정적자를 줄여나가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하는 미국의 정치적 지도력 부족을 세계가 비난하듯이 쇠고기 수입을 트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을 미국인들은 납득하지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시 걱정되는 것은 쇠고기와 같은 문제로 인해 미국으로부터 301조 발동등 서부활극식의 무역보복을 우리가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1년에 1백억달러씩의 흑자를 내는 나라에서 쇠고기수입 개방등을 고집스레 막다가 자동차나 전자·섬유분야에서 수입금지 보복을 당해 생산업체가 조업단축에 들어가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일이 벌어져야 옳은가를 모두들 곰곰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 <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