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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이 기업 뿌리째 흔든다"...업계 '무관용·무자비 원칙'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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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사내 성희롱·성추행 문제를 ‘직장갑질’을 넘어 ‘전사적인 리스크’로 인식하고 예방과 처벌을 함께 강화하는 추세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무관용·무자비 ’원칙이 점점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삼성전자 '무관용', SK이노 '무자비'원칙 #임원교육, 사내제보 등 강조 #일부선 여전히 '연1회 의무교육'으로 갈음

  삼성전자는 2015년 9월 ‘성희롱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eance)’ 선언 후 모든 임직원이 ‘상호존중 실천 서약서’를 작성하는 등 성희롱 사고에 대해서만큼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 중이다. 삼성 관계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점점 강조되고 소비자 인식도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성희롱·추행 이슈는 기업의 이미지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키고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치명적인 리스크”라고 말했다.

지난 7월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대구시 침산동 대구은행 제2 본점 다목적홀에서 사내에서 발생한 성추행·희롱 문제와 관련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박인규 대구은행장이 대구시 침산동 대구은행 제2 본점 다목적홀에서 사내에서 발생한 성추행·희롱 문제와 관련해 허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SK이노베이션 역시 2000년대 중반부터 ‘원스트라이크 아웃, 노 머시(One Strike Out, No Mercy)’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피해자가 외부 전문 상담인력으로 구성된 사내 심리 상담소인 하모니아에 전화해 신고하면 그 날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진다. 조사위에는 여성 변호사가 1인 이상 참석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이후 인사위원회(상벌위원회)에서 피해가 인정되면 가차 없이 퇴사 또는 그에 준하는 징계가 내려진다. 실제 이 제도로 징계받은 사례가 적지 않다. 회사 관계자는 “사내 성희롱이 기업의 근본을 흔들 수도 있다고 보고 점점 처벌수위를 높이고 있어 임원들부터 자발적으로 조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아예 사내 인트라넷을 ‘성폭력’전담으로 운영 중이다. 첫 화면에 배너를 통해 제보 사이트로 연결되는데 본인 사례는 물론 주변 동료의 피해를 목격한 경우에도 제보할 수 있다.

지난해 ‘평등의 전화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431건의 상담 중 118건(27%)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사항이었던 걸로 조사됐다. [중앙포토]

지난해 ‘평등의 전화 고용평등상담실’에 접수된 431건의 상담 중 118건(27%)이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사항이었던 걸로 조사됐다. [중앙포토]

 점포가 많아 상대적으로 여성 인력이 많은 데다 소비자 여론에 민감한 유통업계에서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마트는 전 직원이 윤리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사내 성희롱을 알게 됐거나 관련이 있을 경우 고충 상담실인 ‘행복상담실’로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특히 ‘A매장에서 B책임자 등이 관련돼 이런저런 성희롱 사고가 있었다’는 사례를 익명으로 사내에 전파해 사고 차단 효과를 보고 있다.

 남성 직원이 여성 직원보다 월등히 많은 중후장대 업계에서도 과거에 비해 성희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추세다. 현대중공업 A부장은 최근 울산 본사에서 신임부서장 교육을 받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는 “부서장 교육에 과거에 비해 성희롱 예방 프로그램이 비중 있게 포함돼 있어 참석자들이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처벌 장치에 대해 “연 1회 성희롱 예방을 위한 교육과 사내 성희롱 상담센터 운영 실시하고 연중 성희롱 신고 상담센터를 운영 중”이라고 했다. 또 ‘톡톡(Talk Talk)센터’를 운영해 임직원들이 전문 심리상담사와 상시 면담할 수 있다.

 최근 부기장의 승무원 성폭행 시도 등 사내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르고 있는 대한항공은 “피해자가 인사부로 바로 신고할 수 있는 이메일 계정을 상시운영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대외비지만 확실한 건 엄중처벌”이라고 말했다.

 효성 관계자는 “일반적인 의무교육은 다 실시하고 있다면”면서 “애초에 여성 동료들과 함께해야 하는 회식 자리를 안 만들려고 노력하고 실제 회식도 잘 안 한다”고 말했다.

이소아·김도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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