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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무역협회장 "문재인 정부, 기업에 대한 이해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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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김인호(75·사진) 회장이 지난달 24일 전격 사임한 이후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당시 이례적으로 “정부가 사임을 권고했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던 김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삼성동 무협협회 회장실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자기 생각과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표정이 밝아 보였다. 자신을 ‘시장주의자’라고 소개하는 그가 30년 넘는 공직 생활 끝에 내민 명함도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 김인호’였다. 지면 사정으로 미처 다 싣지 못한 김 회장의 발언들을 최대한 윤색하지 않고 옮긴다.

[단독 인터뷰] #'정부 권고'로 사임…"청와대, 끝내 대통령 뜻 확인 안해줘" #"경제는 명령으로 안돼. 김상조 위원장 경쟁 제한말라" #한미일 공조 강조 "문 정부가 한일FTA 성사 적임자"

-사임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뜻이었나.
“(내가)청와대 뜻이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무역협회장 인사를 대통령이 모르고 결정한 예가 없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을 거다. 정부의 최고위직에서 (뜻이 전달 돼)온 걸로 안다.”

인터뷰중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사진 무협]

인터뷰중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사진 무협]

-누가 어떤 메시지를 전했나.
“우편배달부가 김 씨냐 이 씨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다만 그 전달자에게 2가지를 분명히 밝혔다. 첫째 내가 나갈 때 반드시 사임의 이유를 밝히고 나가겠다, 둘째 대통령이 (나의 사임을)승인했다는 사실을 내게 확인시켜 달라. 첫째는 내가 했고, 둘째는 끝내 안 해주더라. 기대도 안했다. 해 주면 좋은 정부인거다.”

 김 회장은 대표적인 원로 경제 관료이자 자유시장주의자다. 행시 4회 출신으로 전두환 정부 당시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국장을 비롯해 한국소비자보호원장, 공정거래위원장, 김영삼 대통령 당시 경제수석 등 경제부문 요직을 두루 거쳤다.

 정부와 기업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뚜렷하다. 정부의 모든 정책과 제도가 생산적·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본다. ‘기업에 좋은 것이 국가에 좋고, 국가에 좋은 것이 기업에도 좋다’는 ‘기업가형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공정’이란 기치 아래 기업, 특히 대기업에 대한 규제 기조가 부각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이른바 ‘코드가 맞지 않아 경질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임서가 A4용지 5장에 이른다.
“주요 공직에 있는 사람이 ‘일신상의 사유로 그만둔다’는 건 무책임하다. 죽었다든가 다른 데로 간 것도 아니잖나. 그만두는 사람은 물론 그만두게 하는 사람도 최소한 왜 해임한다는 걸 밝혀야 한다. 정책이 바뀌었다든지, 일을 시원찮게 한다든지, 더 좋은 사람이 나왔다든지…. 하다못해 민심 수습용이란 말이라도 밝혀야 하는거다.”

 임기를 4개월가량 남겨놓고 사임서를 제출한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기를 4개월가량 남겨놓고 사임서를 제출한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퇴압력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고자 했나.
“압력이라는 건 받는 사람이 신상에 위협을 느껴야 압력이다. 그런데 난 아니기 때문에 압력이라는 말은 잘못됐다. 무협은 정부와 손발이 안 맞으면 일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사퇴를) ‘선의의 권유’라고 생각한다. 사임을 결정한 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다. 첫째, 우리 사회가 좀 더 분명하고 투명하게 하자는 거다. 둘째, 제도와 현실이 맞아야 한다. 무역협회는 민법상 순수한 민간 경제단체다. 회장단회의·이사회·총회 어느 한 곳도 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는데 실제로는 이번 경우를 보더라도 100% 정부가 관여하고 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제도와 현실의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중요한 거다. 정부가 권한 없는 일을 뒤에서 쉬쉬하며 하는 거, 그런 거 하지 말자는 정부가 이렇게 하면 되겠나.”

 무협의 낙하산 인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민간 경제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회장을 사실상 정부에서 지명해 왔기 때문이다. 70여년 역사에서 17명의 회장이 거쳐 갔지만 기업인은 고 박용학 대농그룹 회장,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등 단 3명에 불과하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회장에 오른 김 회장 선임 시에도 최경환 전 부총리와의 인연으로 낙하산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인호는 박근혜 정부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그 부분은 내 묘비에 ‘영원한 공인(公人)’이라고 새기고자 할 정도로 떳떳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했다. 당시 포스코·효성·KT&G 등 한창 기업조사를 할 때였다. 한 세미나에서 작심하고 ‘기업조사는 신중히 해야 한다. (혐의나 증거가)없어도 기어코 피를 보는 수사 관행은 고쳐야 한다. 황교안 총리도 대통령에게 있는 그대로 똑바로 보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론이 대서특필을 했다. 그랬더니 당시 안종범 수석이 전화를 했다. 대통령이 ‘무역협회 회장님이 ○○기업의 문제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신 거 같으니 알려드리라’는 지시를 받아 전화했다고 하더라. 경고장이었다. 경제장관들, 경제단체장들도 모두 직무유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루는 금융위원장이 국회에서 통과가 안 돼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길래 ‘국회 가서 죽는시늉하고 끌려다니지만 말고 반드시 해야 하는 법이면 의원들 멱살이라도 잡으라고 했다.”

인터뷰중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사진 무협]

인터뷰중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사진 무협]

 김 회장은 “나는 어느 정부 사람도 아니다”라며 “임기를 채웠더라면 회장 영입위원회나 회장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정부는 물론 학계·업계·전문가 그룹이 추천하고 7만 회원사가 인정하는 회장을 선출하는 투명한 제도를 만들고 가려고 했다”고 아쉬워했다.

-문재인 정부 6개월이다. 어떻게 보나.
“이 정부랑은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전체적인 흐름이 내가 생각하는 정책 방향과 너무 다른 곳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다고 그만둔다면 마치 내가 전 정권을 일해 일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로부터 그런 (사퇴)취지가 왔고 사회에 꼭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 그만둔거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두고 논란이 많은데.
“경제는 명령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이걸 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30년 넘게 공직에 있었는데 절반이 지나서야 깨닫게 됐다. 시장을 통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시장 만능주의라고 하는데 시장이 만능이라는 게 아니라 같은 문제를 풀더라도 시장의 기능을 살리고 그걸 활용해서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중소기업도 문제만 생기면 지원·보호·보조 이런 것만 들고나오는데 왜 이 문제를 시장에서 못 푸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들을 어떻게 시장에서만 푸나.
“세 가지를 체크하면 된다. 경쟁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 소비자 선택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했는가. 이런 고민을 경제학자들도 안 하는데 정부가 하겠나. 이 정부뿐 아니라 직전 정부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가 말이 더 잘 통했다.”

-국내외 경쟁을 통한 문제해결로 들린다.
“시장을 이해하려면 자유주의에 대한 철학적 동기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내가 80년대 물가정책국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85개 품목의 물가를 하룻밤 사이에 싹 다 정한 적도 있다 그때는 물자 부족 시대라 그게 가능했다. 그러면서 ‘아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또 대외경제조정실장 때 세계가 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지 알았다. 결국 경쟁을 촉진해야 나라 안에서든 밖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 촉진에는 시장 개방이 답이다.”

 노태우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7개 정부를 거치면서 늘 경제 정책을 다루는 주요 위치에 있었던 김 회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경쟁 저해기관은 정부”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부 기능의 3분의1이 경쟁 제한 기능”이라며 “우리 정부의 문제는 기업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중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면.
“기업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거다. 경제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중심이다. 기업이 결국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고용·분배·복지 이 모든 것의 해결 주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기업이 안 되는데 일자리·고용·분배·복지가 제대로 되겠나. 무조건 기업만 두둔하는 게 아니다. 정부와 기업의 이해가 동시에 맞아 떨어지는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국가, ‘기업가형 국가’만이 발전하는 국가다. 경제학이라는 건 경험과학이다. 시장과 기업을 무시하고 잘 됐던 정부가 지구상에 하나라도 있느냐. 중국조차도 경제만은 시장경제를 한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안하면 경제가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터뷰중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사진 무협]

인터뷰중인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사진 무협]

-‘작은 정부’로 가야한다는 건가.
“최소정부로 가자는 건 ‘노(NO)’다. 정부가 하되 시장을 통해서 하라는 거다. 기업을 살려가면서 하라는 거다. 그러면 정부가 할 일이 더 많아질 거다. 나는 시장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정부 역할을 줄이라는 게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달라져야 한다는 거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반드시 안해야 한다. 시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깊이 고민하는 정부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은 바뀔 부분이 없나.
“소득주도 성장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실질적으로 생산되는 것만큼 국민 소득으로 연결이 안 된다는 데 동의한다. 기업이 훨씬 더 많이 배당해야 한다. 배당성향을 보면 글로벌 스탠다드가 50%다. 벌어서 반은 배당하고 반은 재투자해야 맞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배당성향이 10%다. 지금은 소득을 증가시켜서 소비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

 김인호 회장은 1996년 공정거래위원장의 직급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된 이후 첫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다. 그래서인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자연스럽게 ‘김상조호’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재벌개혁’에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최근 역대 공정거래위원장 모임에서 김상조 위원장을 만나 얘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자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지금 경쟁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하고 있다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사회 약자 보호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에 이긴 강자를 보호하고 패자는 다시 패자부활전을 치를 수 있게 하는 곳이다. 모든 경쟁은 승자와 패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정부 기관이 경쟁을 저해하는 것이 말이 되나. 공정위는 사실 경쟁 저해 요인을 감독하고 규제를 푸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일부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삼성같은 기업이 대여섯게 더 있는 게 제일 좋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더 큰 문제는 외국은 창업주가 당대에 부를 이뤄서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 오르는데 우리는 부자들이 다 2~3세라는 데 있다 자신이 창의적 기업으로 키우지 못하고 부를 물려받는 구조다. 경제가 자유스럽지 않아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업이 나오는 구조가 안 돼 있다."

-중소기업은 어떻게 살려야 하나.
“환율 정책을 잘못 써서 중소기업이 죽은 거다. 원화를 저평가해서 수출을 늘리는 것에만 의지하다 보니 내수 산업의 주머니를 털어 수출 산업을 보조해 주는 결과가 됐다. 중소기업이 대체로 다 내수기업아닌가. 바꿔 말하면 국민 소득을 줄여서 수출해 온 건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단계다. 수출이 잘 되면 원화가 절상될거고 국민과 중소기업 주머니가 늘어나 구매력이 커지는 거다. IMF 외환위기에서 회복하고 나서 정부가 시장에 환율 수급을 맡겼다면 빠른 기간안에 달러당 1000원으로 돌아왔을 거다. 그런데 200~300원을 그냥 수출산업에 보조해 준 거다. 국내 중소기업 지원 제도라고 해 봤자 다 새발의 피다. 환율 하나만 제대로 해도 훨씬 효과가 크고,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격차가 줄어들 거다. 세상에 자기 돈 가치를 낮춰서 좋은 게 어디있나.”

외환위기 조짐이 본격화하던 1997년 10월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강경식 부총리 대신 자신을 경질해달라"며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출한 사직원 사본. 김 회장은 사직원을 공개하며 "나는 정부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공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조짐이 본격화하던 1997년 10월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강경식 부총리 대신 자신을 경질해달라"며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출한 사직원 사본. 김 회장은 사직원을 공개하며 "나는 정부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공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경제위기가 얼마나 혹독한지 극복과 회복, 나아가 경제성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는 당시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게 경제위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97년 10월29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소직(小職)은 부여된 직무(職務)를 수행(遂行)함에 있어서 대통령 각하(大統領 閣下)의 뜻을 충분(充分)히 받들지 못하고 있다고 사료(思料)되어 이에 사직(辭職)하고자 합니다’라는 사직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회복세가 더딘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을 들어봤다.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당장 일자리가 부족하다
“제조업으로 앞으로 얼마나 획기적인 결과를 기대하겠나. 반면 서비스업은 수출할 수 있는게 수두룩한데 하나도 안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교육·법·마이스(MICE)·의료 등이다. 우리가 대학을 제대로 만들어 개방하면 얼마든지 외국 학생들을 끌어올 수 있다 또 사법고시 출신들이 기득권 유지에만 급급한데 법률 시장만 개방하면 몇 년 후면 우리나라 변호사들이 동남아 쪽을 다 석권하고 있을거다. 우리 의료서비스 수준이 얼마나 뛰어난가. 메디컬센터가 활성화되면 당장 10만명 고용은 문제없다. 중동·러시아·중국·동남아 사람들이 모두 우리나라로 몰려올 거다. 그런데도 정부는 의료 민영화는 절대 안된다고 한다. 그러려면 고용을 포기하겠다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고용 늘릴 게 아무것도 없다. 공무원 늘려서 고용 늘리겠다는 게 그게 말이 되나.”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호 무역협회장이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출도 잘 되고 무역 관련 수치도 잘 나오지 않나.
“그렇다. 올해 1조 달러를 돌파할 것 같다. 하지만 경제·산업의 근본적 경쟁력 향상이 없이 수치가 좋게 나온다면 그거야말로 굉장한 위기다. 잘 될 때가 위기다. 이 환경이 언제까지 계속되겠느냐. 반도체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지만 대표적인 사이클 업종이다. (호황이)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드웨어쪽을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부품 쪽에서 근본적인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재협상 절차에 돌입해 정부와 재계의 우려가 높은 가운데 김 회장은 예상외로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고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논리를 반박하면서도 한·미·일 3국이 뭉쳐 함께 가야만 경제는 물론 안보에도 길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에 세게 압력을 넣을 것 같다.
“FTA 문제에 대해 우리가 터놓고 미국과 얘기했을 때 하나도 손해날 게 없다고 본다. 미국이 주장하는 것 중에 일리있는 말은 받으면 된다. 그러면 우리도 주장할 것이 생긴다. 우리 협상팀이 바보가 아니다. 이미 미국측이 우리 정부에 (원하는)리스트를 던지고 간 걸로 안다.”

-한·미 FTA 재협상이 한국에 부정적이지 않을까.
“미국은 버는 것보다 더 쓰는 경제구조를 고치지 않는 한 무역적자를 극복할 수 없다. 트럼프가 경제학 공부를 안 해서 그러는지 다른 미국인은 다 아는데 트럼프만 모른다. 협상 자체는 별 걱정이 없다. 진짜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나는 거다. 북한이 노리는 게 딱 그거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이 한국에서 손 떼게 만들겠다는 데 모든 전략이 맞춰져 있다 북한이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우리는 사실 중국은 못 믿어. 미국 너희가 우리에게 적대감만 버리면 오히려 우리가 미국에 한국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어’라고 하는 거다

 김 회장은 ‘한국의 궁극적 파트너가 중국이냐, 미국이냐’를 묻는다면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라고 단정했다. 한·미동맹과 한·미 FTA가 현실적으로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은 이념적으로 같이 갈 나라고, 세계 최강의 국가이고, 그동안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준 나라인 반면 중국은 우리한테 아무것도 도움 준 것이 없다”며 “지금처럼 (미·중간에)양다리를 어정쩡하게 걸치면 중국이 오히려 우리를 우습게 본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같이 가야하나.
“한·미·일이 같이 가야 경제가 되는 거다. 지금 일본이 미국과 친밀한 그 수준으로 한미·한일 관계를 가져가고 3국이 이해를 같이 하는 쪽으로 나아가면 중국도 함부로 우릴 건드릴 수 없다.  안보든 경제든 한국이 살 길은 그것뿐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서울도쿄포럼’에서 양국 정부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선 안된다. 정부가 국제사회에 ‘우리 할머니들은 우리 정부가 보상하겠다. 일본이 사과 안하면 일본은 영원히 일류국가가 못되는 거다’라고 국제사회에 말해버리면 오히려 일본이 코너에 몰릴거다. 일본 정부에도 물었다. ‘왜 민주국가의 자유시민인 일본이 2차 대전때 이성이 마비된 일본과 동일시하고 사과 자체를 거부하느냐’고. 양국 정부는 국민감정에 편승하지 말고 국민을 교육·설득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한·일 FTA가 필요하다고 보나.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이 의지와 결단으로 한·미 FTA를 했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한·일 FTA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오히려 진보정부인 문재인 정부야말로 반대여론을 설득해 한·일 FTA를 성사시킬 수 있는 정부일 수 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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