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기훈련장에 간 넥타이부대, 매서워진 눈매로 세상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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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뒤로 취침!"

지난 9일 부슬비가 내리던 인천공항 앞 바다의 무의도 해변. 실미도와 인접한 이 섬에서 이동통신 장비업체 인텍웨이브의 직원 30여 명이 갯벌 위를 구르는 얼차려를 받고 있었다.

극기 훈련 전문 민간업체 '해병대 전략캠프' 교관의 눈초리가 매섭다. 이날은 2박3일간의 극기 훈련 마지막 날. 군복을 입고 산악 행군, 해병대용 고무보트 머리에 이고 뛰기 등을 한 직원들은 막판 안간힘을 썼다.

이 회사 임성완 전무는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 간 팀워크가 다소 흔들려 극기 훈련 캠프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박병규 선임연구원은 "9명이 한 팀을 이뤄 바다에서 보트를 젓는데 처음엔 손발이 맞지 않아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했다"면서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의 목은 쉬었고, 보트를 머리에 이고 뛰다 목 부위가 부어 올랐다. 국민은행은 전국 137개 기업금융 점포의 과장급 이상 330여 명을 18개 팀으로 나눠 올 초부터 1박2일씩 해병대식 극기 훈련을 받게 하고 있다.

국민은행 이상권 중소기업팀장은 "'전쟁 상황'으로 표현될 정도로 은행간 영업 경쟁이 날로 거세져 간부의 승부 근성을 키우려 이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기 훈련 캠프'에 임직원을 보내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회사의 조직력을 높이고 임직원의 정신을 재무장하려는 취지다. 삼성SDS는 최근 김인 사장 등 모든 임직원이 참여하는 야간행군을 했다. 경기도 분당 사옥~서울 잠실을 왕복했다.

포스데이타와 SK C&C 영업 직원들은 실미도 등지에서 해병대식 극기 훈련을 받았다. 해태제과와 농협은 올해부터 신입사원 교육 과정에서 극기 훈련 체험을 새로 넣었다.

또 LS산전은 올 연말까지 2900여명의 전 직원을 해병대식 극기 훈련장에 보낸다.

'해병대 전략캠프'의 이희선 훈련본부장은 "기업의 훈련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청평에 군대식 막사와 암벽 훈련 시설 등을 짓고 있는 마린클럽 해병대교육단 관계자는 "기업의 극기 훈련 수요가 늘어나 연수원이나 민박 시설 등을 빌리기 힘들어 훈련장을 건설중"이라고 말했다. 훈련장소로는 영화에서 북파 부대 훈련장으로 소개된 실미도가 인기다.

실미도에는 밀물 때만 아니면 무의도에서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인텍웨이브 직원들도 실미도에서 산악 행군을 했다. 해병대식 훈련은 보통 바닷가에 있는 지자체 연수원이나 민박 시설을 빌려서 숙박을 한다.

하지만 지나친 극기 훈련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난 13일 극기 훈련을 받던 모 이동통신업체의 직원이 훈련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극기훈련 캠프의 한 관계자는 "훈련 참가자들의 건강 상태를 사전에 파악해 훈련 스케줄을 짜야 한다"며 "평소 운동이 부족한 샐러리맨들에 대한 무리한 훈련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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