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강제 출당 보수 재편 분수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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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黜黨·당원 자격을 빼앗음)시켰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내린 지 239일 만의 절연(絕緣)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20년간 보수 정당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홍준표 “박근혜당 멍에 벗어나야” #내년 지방선거 염두에 둔 포석 #바른정당 통합파 집단탈당 명분 #친박 “홍 대표 단독 결정 수용 못해”

하지만 홍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당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한국당 당적 문제를 정리하고자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당적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를 열어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에 대한 결정을 홍 대표에게 맡기기로 했다.

한국당 당헌은 정치적 용어인 ‘출당’ 대신 ‘제명’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날 홍 대표는 당내 친박계나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한 듯 제명이란 단어 대신 ‘당적이 사라진다’는 표현을 썼으나, 당적 박탈은 당헌상으론 제명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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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의 결정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고민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당적을 계속 유지할 경우 내년 지방선거는 ‘탄핵심판 선거’나 ‘적폐청산’ 프레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홍 대표의 주장이다.

홍 대표는 “(여권이) 박 전 대통령의 문제를 내년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기 위해 무리하게 구속 기간까지 연장하면서 정치재판을 하고 있다”며 “한국당을 ‘국정 농단 박근혜당’으로 계속 낙인찍어 한국 보수우파 세력을 모두 궤멸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이 보수우파의 본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박근혜당’이라는 멍에를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서) 부당한 처분을 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당 출신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법률적·정치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박계는 반발했다. 친박계 김태흠 최고위원은 “대표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앞으로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는 등 강력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친박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통령에게 출당(제명) 조치를 내리면서 한국당과의 재결합을 원하는 바른정당 내 통합파 의원들은 집단 탈당의 명분을 갖추게 됐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등은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한국당 복당의 조건으로 걸어왔다. 바른정당 통합파 의원 8~10명은 6일 탈당할 계획을 갖고 있지만 일단 오는 5일 열리는 당 의원총회의 결론을 지켜볼 예정이다.

야권 재편이 가시화되면서 정치 지형이 꿈틀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한국당을 제외한 민주당(121석)과 국민의당(40석), 바른정당(20석)이 참석하는 정책회의를 제안했다. 3당 의석(181석)을 합치면 안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준(재적 의원의 60%인 180석)을 넘어선다. 그러나 바른정당이 붕괴하면 이런 구상은 물거품이 된다.

안효성·백민경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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