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면 화를 입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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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당사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당사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當斷不斷 反受其亂(당단부단 반수기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한자성어다. 이는 중국 고전 사기(史記)에 나오는 구절로  “당연히 처단해야 할 것을 주저하여 처단하지 않으면, 훗날 그로 말미암아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는 뜻이다. 홍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을 결정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은 보수의 아이콘이 보수로부터 축출당한 꼴이다. 그 한가운데 칼을 휘두른 이가 홍 대표다. 홍 대표 측은 “누군들 그런 악역을 맡고 싶었겠나”라고 반문했다. “10년 전 친노는 스스로 ‘폐족’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치권에서 퇴장했다. 그게 역설적으로 부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근데 ‘친박’은 대통령 탄핵 사태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쳐 내야지”라고 덧붙였다. 보수 재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리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을 마친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을 마친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비록 내부 진통이 적지 않았으나 홍 대표로선 ‘박근혜 출당’을 거치며 오히려 정치적 위상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홍 대표가 8월에 출당을 공식적으로 처음 거론하고, 9월 혁신위가 탈당 권유를 권고했을 때만 해도 박 전 대통령 출당은 10월 중순경 1심 재판이 끝난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이 연장되고 재판이 늦춰지면서 "출당은 물 건너가는 거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감옥에 있는 사람을 모질게…”라는 ‘동정론’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청원 의원의 ‘녹취록’ 공개 논란과 “최고위에서 표결하자”는 친박계의 조직적 반발도 부담이었다. 하지만 홍 대표는 특유의 완력으로 당 안팎의 잡음을 누르며 ‘출당’을 밀어붙였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주인(박근혜) 없는 계파가 무슨 힘이 있나. 모래알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홍 대표도 가속을 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장은 홍 대표의 당내 장악력이 공고해질 전망이다. 한국당 중진 의원은 “솔직히 홍준표의 ‘무대포 ’정치를 다들 마뜩잖아 한다. 외연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대안이 없지 않은가. 보수를 대표할 새로운 인물이 나오지 않고,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독주하는 이상  홍준표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1일 바른정당 의원총회장 들어서는 김무성 의원.[연합뉴스]

1일 바른정당 의원총회장 들어서는 김무성 의원.[연합뉴스]

여기에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바른정당 통합파의 한국당 합류는 홍 대표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 통합파는 지금껏 보수 통합의 전제 조건으로 ‘친박 청산’을 주장해 왔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이 결정된 만큼 최소한의 명분은 갖추게 된 셈이다. 바른정당은 5일 오후 의원총회를 가질 예정인데, 이 자리가 사실상 자강파와통합파간의 ‘분당(分黨) 의총’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20명 바른정당 의원 중 최소 7명, 최대 12명이 한국당 합류로 전망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태흠 최고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출당과 관련 비공개 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 김태흠 최고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출당과 관련 비공개 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이 홍 대표에게 정치적 이득만을 안기는 것은 아니다. 당장 친박계가 들썩이고 있다. 원천무효(김태흠), 법정투쟁(유기준) 등의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선 “어차피 여기 있어 봤자 홍준표한테 내침만 당할 게 뻔하다. 밖으로 나가 조원진의 대한애국당, 태극기 집회 등 외곽의 보수 세력과 연대를 꾀하는 게 낫다”는 소리도 나온다. 2008년 총선에서 집결했던 ‘친박연대’의 새로운 버전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정통 보수의 뿌리를 잘라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느냐”는 대구ㆍ경북 지역의 반감도 홍 대표로선 부담스럽다. 여기에 아직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서청원 ‘녹취록’ 등도 여전히 휘발성을 갖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홍 대표는 ‘박근혜 절연’ 작업을 통해 보수의 적자를 잇고자 하나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내년 지방선거전까지 당 정비와 보수세력 재편이 홍준표 리더십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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