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도 승객도 모르는 택시 환승할인 … “누구를 위한 제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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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산시 개인택시 기사인 권태용(65) 씨가 지난달 30일부터 시행 중인 택시 환승할인 교통카드를 안내하는 스티커를 가리키고 있다. [이은지 기자]

부산시 개인택시 기사인 권태용(65) 씨가 지난달 30일부터 시행 중인 택시 환승할인 교통카드를 안내하는 스티커를 가리키고 있다. [이은지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2시 30분쯤 부산역 앞. 박진규(44·회사원) 씨가 택시 문을 열며 “오늘부터 택시 환승할인이 된다고 들었는데 맞냐”고 택시기사에게 물었다. 기사는 “1일부터 환승할인이 시행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자가 기사에게 “부산시가 지난달 30일부터 환승 할인제를 시행했다”고 알려주자 “그런 제도가 시행되는 줄 모르는 기사가 태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어제부터 시행됐다 한들 혜택을 본 승객은 아직 한 명도 없다. 누구를 위한 환승할인인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중교통 연계때 요금 500원 할인 #부산시 지난달 30일 전국 첫 시행 #홍보 부족으로 이용객 거의 없어 #5% 소지한 선불 교통카드만 혜택 #기사들 “후불카드 확대돼야 효과”

부산시의 택시 환승할인은 시내버스, 도시철도, 동해선, 부산·김해경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뒤 30분 안에 택시를 타면 승객에게 요금 500원을 깎아주는 것이다. 할인을 받으려면 캐시비·하나로·마이비 같은 선불식 교통카드를 이용해야 한다. 가장 대중적인 선불식 교통카드인 ‘T머니’는 할인이 안 된다.

문제는 부산의 대중교통 이용객 가운데 선불식 교통카드 소지자가 5%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이 제도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산역 주변을 주로 운행하는 법인택시 기사 김종연(63) 씨는 “하루에 승객 20~30명을 태우는데 선불식 교통카드를 내는 사람은 한명도 안 된다”며 “선불식 교통카드를 많이 가진 학생들이 택시를 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환승할인을 위해 지난달 26일 택시 내 단말기 시스템을 업데이트했다. 하지만 택시에 비치해야 할 안내문과 택시 문에 붙여야 할 스티커를 받지는 못했다. 제도가 언제 시행되는지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택시기사들이 요구한 제도가 아닌데 왜 시행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이와 달리 개인택시 기사들은 지난달 25일까지 단말기 업데이트를 마치고, 안내문·스티커 등을 받았다. 이날 권태용(65)씨의 택시에는 안내문과 할인 혜택을 받는 카드 종류가 적힌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하지만 권씨는 “지난달 30일 이후 혜택을 본 승객은 없다. 선불식 교통카드 소지자가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승객도 이 제도를 모르기는 마찬가지. 서울 출장을 마치고 부산역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김미정(38) 씨는 “출장이 잦아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신용카드를 이용하는 나로선 평생 혜택을 못 받을 것 같다”고 시큰둥했다.

선불식 교통카드는 지하철 역사나 편의점에서 2500원을 주고 사야 한다. 또 카드 충전 금액이 부족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택시를 먼저 타고 지하철·버스 등을 이용해도 환승 할인을 못 받는다. 택시기사 김종연(63) 씨는 “후불식 교통카드로 확대돼야 그나마 제도가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이 제도 시행에 투입되는 예산으로 택시 감차를 늘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시는 택시 환승할인을 위해 이미 예산 33억7500만원을 확보했다. 환승 할인으로 손해를 본 택시회사와 기사들에게 보전해주기 위한 예산이다. 부산시는 연말까지 이 제도를 시행한 뒤 내년에 후불교통카드로 확대할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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