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인공포증 앓아 … 40년째 시 쓰는 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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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승철 시인

신승철 시인

정신건강 전문의인 신승철(64·인천 블레스병원장·사진)씨. 그는 시를 쓴다. “레지던트(전공의 과정)였던 1980년부터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왔어요. 그런데 한땐 저도 대인공포증을 앓은 적이 있지요. 고독함을 다스리기 위해 시 쓰기에 몰두한 게 벌써 40년째네요.”

박두진 문학상 받은 신승철씨 #“고독함 다스리기 위해 시에 몰두” #일상 체험 산문처럼 쉽게 풀어 써

197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신 시인은 최근 제12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가 1년간 『문학청춘』에 연재한 다섯 가지 장시(長詩)인 ‘병’ ‘기적 수업’ ‘어둠 속에서’ ‘오케이’ ‘설산에 올라’ 등을 모아 펴낸 시집 『기적수업』으로다.

126쪽짜리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사상’(空思想·인간을 비롯한 만물에 고정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는 불교사상). 일찍이 불교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알코올 중독, 조현병(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은 사실 스스로를 구속시키는 마음의 질병”이라고 진단하며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두면 자연 치유될 수 있는데, 이게 불교에서 말하는 무위(無爲), 곧 공사상과 밀접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정신과 의사의 노트』(1995) 등 여러 권의 에세이집을 펴냈던 그는 “난해한 레토릭을 자제하고 그 대신 평소 일상에서 체험하며 깨우친 공사상의 개념을 한 편의 산문처럼 쉽게 시집에 풀어 썼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완벽한 이 어둠 속에서/ 오직 명료한 의식만이 연주하는 이 평온과 영원과 침묵에 대한 찬사/ 나는, 오늘 일 다 마친 빈 찻잔이다.’(어둠 속에서)

‘영원의 속삭임처럼 흰 눈이/ 우리의 머리 위에 사뿐사뿐/ 내려앉고 있다/ 지금 이 세상은 오직 한가로움만이 드날린다’(설산에 올라)

신 시인은 인천고 재학 시절 국어교사의 영향으로 시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선생님이 ‘별헤는 밤’(윤동주) ‘국화 옆에서’(서정주) 같은 시를 읽어주며 시인들의 생애도 생생하게 알려줬어요. 옛 시인이 지은 싯말과 삶의 배경에 진지한 관심이 생겼지요. 의대를 진학하면서도 그때의 기억으로 꾸준히 시를 쓴 것 같습니다.”

신 시인은 72년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뒤 틈틈이 시를 썼다. 성의문학상·연세문학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이후 40년간 현직 의사로, 시인으로 활동한 그는 “힘닿는 데까지 글을 쓰고, 진료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수상식은 지난 28일 경기 안성 안성여고 대강당에서 열렸다. “장문(長文) 전통을 확장적으로 계승하면서, 인간과 우주와 신성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으로 형이상학적 탐구의 결실을 보여줬다”는 것이 심사위원회 평이다.

글=조진형, 사진=김경록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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