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년]“권위 벗었지만 보수세력은 국민 무서운 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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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25일 부산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25일 부산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권위 벗고 소통 늘었지만, 보수 세력은 여전히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

'부산 촛불' 이끌었던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지난 1년간 부산 지역 주요 적폐는 별로 달라진 것 없어 #폐쇄·권위적이던 정치권·청와대 국민곁 한발 다가온 건 성과 #신고리 5·6호기 재개, 문 대통령 공약 지지했던 국민 배신한 것 #문 정부, 공정사회 위한 국정과제 추진하되 숙의과정 거쳐야"

보수 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부산에 촛불집회를 이끌며 시민의 힘을 보여준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정당 등 100여 개 이상 단체로 구성된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이하 부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부산에서 촛불집회는 24차례 진행됐고, 참가 인원은 93만1800명(20차까지 기준) 등 100만여 명에 달했다. 부산 시민 3명 중 1명꼴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지난 25일 부산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양 사무처장에게 촛불집회 이후 지난 1년 동안 달라진 게 뭐냐고 물었다. “별로 없다”는 냉소적인 답이 돌아왔다.
'엘시티 비리', ‘부산국제영화제 블랙리스트’, ‘부산지하철노조 간부 해임’ 등 부산 지역의 적폐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부산의 적폐를 낳은 시스템을 바꾸고 제도 개선을 해야 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며 “보수 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부산은 문재인 정권 눈치를 보며 생색내기용 정책을 내고 있지만 허점 투성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부산 서면 중앙로에서 박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의 구속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 중앙포토]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부산 서면 중앙로에서 박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의 구속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 중앙포토]

예를 들어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 이후 부산시가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위원들의 이름은 가린 채 공개하는 식이다. 또 부산시가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마트타운 건립 허가는 내주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게 양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그는 “중앙에서 정권이 바뀌고, 내년 지방의회 선거까지 앞두고 있어 지자체가 국민 눈치를 보고 있지만, 정책의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다”며 “보여주기식 시정에 그친 탓에 부산 시민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문 정부의 국정 로드맵을 ‘신(新)적폐’로 규정한 것은 국민의 힘을 우습게 보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양 사무처장은 “촛불의 힘으로 들춰낸 적폐를 덮고 새로운 프레임을 짜기 위한 전략으로 ‘신적폐’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다”며 “정권 교체를 일군 국민의 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의 하야와 헌재의 신속한 탄핵 인준을 요구하는 부산 촛불집회가 지난해 12월 2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중앙로에서 2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중앙포토]

박 대통령의 하야와 헌재의 신속한 탄핵 인준을 요구하는 부산 촛불집회가 지난해 12월 2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중앙로에서 2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중앙포토]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던 정치권과 청와대가 문턱을 낮추고, 국민의 알권리가 강화됐다는 점은 성과로 꼽았다. 그는 “국정원과 국방부 비리, 블랙리스트의 존재 등 과거의 적폐가 드러나 국민도 알게 됐고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촛불집회의 경험을 공유한 국민의 주권의식이 강화되고 시민의식이 높아져 대한민국 사회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문 정부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지지해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양 사무처장은 “문 대통령이 합리적인 근거나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공론화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긴 것은 비겁했다”며 “사드 배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외교·안보나 이권이 개입된 사안을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입장을 발표하는 게 문 대통령의 책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시민마이크_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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