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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시한폭탄 자영업자 대출 … 처방 대신 진단만 내놓은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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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진우 경제부 기자

정진우 경제부 기자

자영업자 대출은 14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숨은 뇌관 중 하나다.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 160만명 중 129만 명(81%)은 가계 대출까지 함께 떠안고 있고, 1인당 평균 대출액은 3억4100만원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신용등급이 낮은 탓에 1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이용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장기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 경우 이들 대부분은 ‘이자 폭탄’을 맞는다.

1인당 평균 대출액 3억원 넘는데 #정책자금 지원 이름만 바꿔 재탕 #대출심사 강화, 구조조정 유도해야

금융위원회는 올해 초 자영업자 대출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확한 자영업자 대출 규모를 파악하고 그로 인한 위험 요인을 상세히 분석하기 위해 자영업자 대출관리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약 10개월간의 분석과 고민 끝에 금융위는 지난 24일 발표한 ‘2017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그 해결책을 담았다.

올 상반기부터 ‘A급 보안’을 유지하면서 비밀스럽게 만든 가계부채 대책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처방전’이 아니라 ‘진단서’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자영업자 대출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방안들은 정책자금과 금융상품을 늘리는 등 단순한 ‘지원 확대’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이미 시행이 완료된 정책이거나 기존 정책을 이름만 바꿔 재탕한 경우였다.

자영업자 맞춤형 자금지원 방안으로 내놓은 ‘해내리 대출’이 대표적이다. 해내리 대출 중 ‘해내리 1’ 대출은 IBK기업은행의 소상공인 대출에서 금리와 보증료만 추가 인하해 이름을 바꿔 달았다. 소상공인에게 저리로 최대 7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해내리 2’는 신용보증재단에서 실시하는 소상공인 신용보증대출과 다를 바 없다.

이미 시행이 완료됐거나 시행 예정인 정책을 재탕한 경우도 많았다. 내년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27.9%→24%)하는 정책은 이미 지난 8월 결정된 사안이고, 우대 수수료율이 적용되는 영세·중소 가맹점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정책은 이미 시행 중이다.

지난해 새로 자영업에 뛰어든 업체는 110만 곳. 같은 기간 83만 곳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 자영업자 대출 문제는 결국 쉽게 문을 열어 빨리 망하는 자영업 생태계에 기인한다는 의미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난달 ‘자영업자 폐업의 주요 문제점 및 정책적 지원방안’ 보고서를 통해 융자 위주의 금융 지원 방식이 가진 한계를 지적했다. 소상공인에 대한 단순한 정책자금 지원은 결국 쉽게 자영업에 뛰어들어 금방 망하게 할 뿐이라는 얘기다. 실제 예산정책처는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자금은 2012년 5050억원에서 올해 2조2470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자영업자 공급 과잉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의 자금 지원이 자영업자 공급과잉 문제를 심화시키거나 한계 소상공인의 연명수단에 그치지 않도록 대출 심사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가계부채 문제의 뇌관인 자영업자 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사업성 있는 자영업자를 선별하고 자체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먼저다.

정진우 경제부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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