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중국식으로 다 바꿔” … 현대차 ‘현지화 2.0’ 가속 페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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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국 현대 기아차에 새로 영입한 디자인담당 인사들

중국 현대 기아차에 새로 영입한 디자인담당 인사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지난 넉 달 동안 세 명의 스타 디자이너를 잇따라 영입했다. 이들은 국적도 나이도 출신 회사도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자동차 디자인 부분의 ‘중국통’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중국통 디자이너 3명 잇따라 영입 #구이저우성에 빅데이터센터 구축 #기술 개발, 고객 서비스에 활용 계획 #인맥 두터운 화교 출신 총경리 임명 #판매·경영 등 맞춤형 체질 개선 나서 #“실행 시점 늦었다” 일부 지적도

현대·기아차는 지난 18일 중국 현지 법인 베이징현대차의 설립 15주년을 맞았다. 지난 15년은 영광의 세월로 불러도 좋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중국 시장 점유율 선두를 다투고 있는 폴크스바겐과 제너럴모터스(GM)가 중국에서 1000만대를 파는데 각각 25년과 17년이 걸렸지만, 현대·기아차는 이보다 빠른 13년 만에 누적 판매 1000만대를 돌파했다.

그럼에도 15주년 기념일은 우울하기만 했다. 올해 들어 중국 시장에서 전례 없는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업체들의 최대 격전지가 됐고, 중국 현지 브랜드의 추격을 뿌리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사드 보복’이란 대형 악재까지 터졌다.

현대·기아차는 축배를 드는 대신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다음 15년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 진출 2기’에 맞춘 ‘현지화 전략 2.0’이 핵심 카드다. 카드의 첫 장은 폴크스바겐그룹 중국 디자인 총괄이었던 사이먼 로스비를 지난 6월 영입한 것이다. 중국기술연구소 현대차 디자인 담당 상무로 영입된 그는 10년 가까이 중국 소비자의 기호를 연구하며 폴크스바겐의 중국 전용 모델 및 중국형 디자인 개발을 담당했다. 중국 자동차 디자인 업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지난 11일 중국기술연구소 기아차 디자인담당 상무로 영입한 올렉 손 역시 디자인 분야의 ‘중국통’이다. PSA(푸조·시트로엥)그룹에서 4년 동안 중국 디자인 총괄 역할을 한 그는 ‘현지화 전략 2.0’을 수행할 적임자였다. 기아차 관계자는 “올렉 손이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중국시장 경험과 이해도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라며 “기아차가 중국시장에서 재도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달 기아디자인센터 스타일링담당 상무로 영입한 피에르 르클레어 역시 중국 창청기차의 디자인 총괄을 역임했다. 중요한 디자인 거점마다 중국 디자인 전문가를 전진 배치해 완전한 ‘중국 디자인 편대’를 꾸린 것이다.

중국에서 많이 팔린 현대차 모델

중국에서 많이 팔린 현대차 모델

디자인에 이어 기술 개발과 고객 서비스도 부문에서도 현지화를 위한 고삐를 조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중국 구이저우성에 1200㎡ 규모의 ‘현대차 빅데이터센터’를 세웠다. 센터가 들어선 구이안신구는 중국이 지난해 ‘빅데이터 산업 특화 국가급 신구’로 지정한 곳이다. 애플·알리바바·IBM 등 글로벌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놓은 곳이며, 자동차 업체 중에선 현대차가 처음으로 이곳에 입주했다. 이 센터가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현대차의 첫 해외 빅데이터센터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2013년 경기 의왕시에 국내 빅데이터센터를 세웠지만, 해외에 빅데이터센터를 구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시장 공략이 현대·기아차에게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영과 판매에 있어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달 현지 법인인 베이징현대차의 최고경영자격인 총경리에 담도굉 중국지원사업부장(부사장)을 임명했다. 화교인 담 부사장은 입사 이후 오랫동안 중국 업무를 맡아왔고, 현대차에서 누구보다 중국 상황을 잘 이해하는 ‘중국통’으로 불린다. 중국 측 인맥 역시 두텁다. 경영 부문에서 ‘현지화 전략 2.0’을 수행할 만한 인물인 것이다.

중국 구이저우성에 들어선 현대차 빅데이터센터. 지난달 26일 개소식을 열고 정보 수집과 중국 맞춤형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사진 현대·기아차=뉴스1]

중국 구이저우성에 들어선 현대차 빅데이터센터. 지난달 26일 개소식을 열고 정보 수집과 중국 맞춤형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사진 현대·기아차=뉴스1]

또한 현대·기아차는 최근 100여명의 인력을 투입해 중국 시장 경쟁력 강화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고, 앞서 8월에도 중국 상품전략과 연구개발(R&D) 업무를 통합한 ‘중국제품개발본부’를 신설했다. 기술 개발과 판매 전략 수립, 경영 등 전반적인 부문에서 중국 맞춤형 체질 개선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현재로서는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런 전략들을 실행한 시점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지적도 많다. 한장현 대덕대 자동차과 교수는 “사드 보복이라는 현상에 모두 가려져 버린 측면이 있지만, 이미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부진이 시작되고 있었고 글로벌 업체뿐 아니라 중국 현지 차들도 현대·기아차를 거세게 압박한지 오래”라며 “최소한 5년전에는 이런 전략들이 실행돼야 했는데 현재로선 전망이 밝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차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이유다.

현대 기아차 월별 중국 판매 추이

현대 기아차 월별 중국 판매 추이

◆앞으로도 세계 최대 시장은 중국=중국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다. 어떤 지표를 봐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가 지난 7월 중국 전역에서 최근 1년 안에 새로 자동차를 구매한 5800명의 중국 소비자를 조사한 보고서를 본지가 입수해 분석한 결과, 중국 자동차 판매대수는 지난해 2280만대에서 2022년 3010만대로 730만대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5% 성장률이다.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전세계 자동차 판매 증가 분의 52.6%를 중국이 차지하는 것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 중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 속도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 아니지만,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시장이 향후 정체되거나 오히려 축소될 것이란 전망이 많은 만큼 중국 시장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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